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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2

만능문화묘랑 (万能文化猫娘) [1992]

by 노바_j.5 2009. 7. 30.
어렸을 적 게임월드 잡지에서 처음 접했던 [만능문화묘랑]. 당시에는 캡쳐샷과 함께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스토리가 써져 있었는데 인상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음악으로 접하고... 이제와서 보게 되니 새삼스럽군.

[만능문화묘랑]은 그렇게 90년대의 향수를 물씬 풍긴다. [3x3 Eyes]로 유명한 다카다 유조 원작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다보면 다카다 유조보다는 내용부터 그림까지 그 전후 시기 유명 작가들의 분위기가 진하게 묻어난다. (어쩌면 한 시대의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정말 일본 만화스러운' 시절의.) 90년대 초반은 애니메이션 황금기가 지나가고, 전통 셀애니메이션 방식이 그 기술 면에서 정점에 다다랐던 때이기도 한데, 특히 OVA의 퀄리티는 단연 뛰어났다. 더러는 '끝물이 몰렸다'거나, 황금기에서 남은 여세로 마지막 부스트를 넣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작품을 보면서 가장 처음 와닿았던 것은 인기요소의 결합이다. 미소녀 여고생, 메카, 고양이(모에)... 그야말로 검증된, 대표적인 요소들만 가져다 섞어놨는데, '절대 질 수 없다!'라는 각오와, 동시에 모종의 절박함마저 감지된다. 작품 구성을 작게 하면서 주인공 누쿠누쿠한테 총력을 기울인 듯한 모습인데, 이 고양이 소녀는 그에 걸맞는 빼어난 매력을 자랑하면서 작품을 이끌고 달려나간다. (지금 봐도 저 헤어스타일로 준 포인트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생각하다 보면, [만능문화묘랑]을 꿰뚫는 핵심은 '불황'이 아닐까. 위에 언급했듯이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도 어딘가 절박함이 느껴지고, 사회적으로도 일본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불황의 바람이 휘몰아치던 때였다. 작품 자체도 분위기는 밝지만 그 배경을 보면 - 이혼 가족이라던가 - 상당히 어두운 걸 알 수 있다. 당시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이 불황이란 키워드에서 얼마나 자유로웠겠냐마는... [만능문화묘랑]에서는 그걸 누쿠누쿠 한 사람에게 걸고 뒤엎다시피 했으니, 완전 소중한 캐릭터일 수 밖에.

작품을 보면서 반가웠던 것이 성우진인데, 하야시바라 메구미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위 '맛간 여성' 역의 본좌(...)인 시마즈 사에코가 나온 것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원조 나가레 료마 역을 맡았던 카미야 아키라 씨가 출연해서 놀랐다. 출연작 목록을 보니 신작에 레귤러로 출연한 것은 - 명탐정 코난 정도를 제외하면 - 거의 마지막이었던 듯 싶다.

인기에 힘입어 후속작이 나오기도 하였으나 거의 무념 수준인 것 같고... 이 92년도 OVA 판도 첫 3편과 뒷 3편이 묘하게 다르다 싶었는데, 이것 역시 제작 중단되었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원작 만화도 다른 잡지에 나눠서 연재한 걸 단행본 1권으로 합친 거라니, 정말 불황은 불황이었나 보다. 이 정도 퀄리티와 매력을 가진, 그것도 반 쿨(6화)짜리 작품이 그랬다니 조금 놀라웠다.

내용이나 스타일 면에서는 90년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크게 이야기할 건 없지만... 마지막 6화의 인물 작화가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아 아쉬웠다. 덧붙여 요즘보다 과거의 캐릭터들이 더 건강하고 인간스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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