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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5

골든 보이 (GOLDEN BOY さすらいのお勉強野郎) [1995]

by 노바_j.5 2010. 3. 28.
에가와 타츠야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반열에 든다고 생각한다. [골든 보이]는 분량은 적어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데, 본편에도 언급하듯이 그는 색기있는 그림을 너무나도 잘 그리는… 즉, 에로티시즘의 극에 달한 대중작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버전 [골든 보이]는 6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4부는 만화 원작 에피소드들을 그대로 채용했고, 5, 6부는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 이야기로 되어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판 [골든 보이]는 원작 만화보다 완성도가 높다.

내가 감히 그렇게 단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애니메이션 판 [골든 보이]는 원작자 에가와 타츠야의 고질적인 용두사미식 결말에서 벗어나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획득하며 언제 어떻게 끝을 낼 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에가와 타츠야의 대표작에서 곧잘 발견되는 문제점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심리적인 면을 파헤치다가, 종국에는 별 의미 없는, 편집증적인 말장난으로 전락해버린다는 점이다. ‘일본인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가장 잘 표현해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의 표현력은 발군이지만, 어디까지나 찰나에 지나가는 느낌의 영상화에 그칠 뿐, 에가와 타츠야는 그 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의 의미나 결론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스스로가 펼친 허언(虛言)의 미로 속에서 헤매이다가,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극한 상황,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홀연히 손을 떼고 작품을 놓아버린다. 작가로서 좋은 습관이라고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그의 작품들 중에서 좀 더 아동 취향이고 단순 코믹물에 가까운 [마법동자 타루루토]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춘기 소년의 질풍노도와도 같은 그의 스타일은 [골든 보이]에서 또다른 찝찝함을 안겨주는데, 매력적이면서도 오만하고 콧대높던 여성들이 마지막 순간 눈물 콧물을 다 쏟아내면서 정 반대의 - 순종이라기보다는 자아 자체를 주인공에게 완전히 위탁해버리는 듯한 -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정복했다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점이 주인공이 표방하는 극히 선하고 순수한 (변태스럽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는) 의지와는 상당히 어긋나있다는 점이다. 뭐, 이것이 일본적이라면 일본적이고, 매력이라면 매력이겠다만은…

애니메이션 판 [골든 보이]가 원작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오리지널 편인 5, 6화에 있다. 키타쿠보 히로유키 감독은 [골든 보이]라는 작품의 포인트를 정확하게 두 개로 나누는데, 5화에서는 성적 쾌감을, 6화에서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두는 데에 주력한다.

원작을 고스란히 옮긴 1~4화의 경우, 만화에 비해서 야한 느낌이 덜 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것은 애니메이션과 만화 간의 포맷 차이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자유롭게 나뉘어진 멈춰진 그림들과 그 전후의 여백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만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시간과 공간의 지배를 받는다. 5화에서는 이 문제에 정면으로 봉착해서 애니메이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골든 보이]의 매력을 보여주는데, 모터바이크 위에서 성적 도취에 빠지는 레이코의 움직임은 에가와 타츠야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에로스의 정수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낸다. 속도감을 보여줄 수 있는 모터바이크를 주 소재로 잡았다는 점 또한 정석적이다. 보태어 경주 장면에서는 시원시원한 액션의 표현으로 애니메이션이 자체적으로 갖는 매력을 한껏 보여주는 데에 주력한다. 예컨데 5화는 외적 표현에 올인한 작품이다.

반면, 6화의 중점은 5화와는 정 반대다. 6화의 히로인 치에는 분명히 매력적인 용모를 갖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저속해지지 않는다. 6화에서 그나마 한껏 숨을 죽인 야시시함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제 3자(여성 프로듀서)의 몫이다. 치에의 역할은 순수히 주인공 킨타로의 선량함과 그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제작진은 6화의 무대로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비추면서 작품 외의 시선을 작품 내의 주인공들과 동화시킨다. 그리고 지금까지 출연했던 모든 히로인들을 한데 엮어서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밝고 명랑한 피날레. 깔끔하지 아니한가!

물론, 원작 만화에서 볼 수 있는 순수한 에가와 타츠야적 미학이라던가, 분량의 차이에서 오는 이야기의 다양성이나 양적 측면에서 애니메이션은 그 한계가 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 버전의 [골든 보이]가 무작정 원작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야하면서도 단순히 외설적이지만은 않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접근한 애니메이션 [골든 보이]는, 결론적으로는 아주 야하지도 않고 극히 감동적이지도 않은 어중간한 작품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을 조금 접고 한걸음 물러나서 보면 여러 요소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은, 꽤 인상적인 작품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키타쿠보 히로유키를 위시로 한 제작진의 능력과 태도가 돋보이며, 특히 미형의 디자인과 극에 달한 애니메이션 퀄리티와의 조화는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