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감상 :: 스바루

노바_j.5 2005. 7. 24. 05:26

스바루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되는 커버.

많은 것을 말해주는 청과 적의 강렬한 대비.
포즈와 구도 등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는
혹은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돋보입니다." tt_link="" tt_w="240px" tt_h="300px" tt_alt="" /> 119 구조대를 그린 소다 마사히토씨가 다음으로 선보인 작품입니다. 119 구조대를 재미있게 봤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소다 씨는 분명히 만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바루에서도 소다 씨의 강점인 거칠고 투박한 선의 활용과 거침없이 불타는 듯한 연출 등은 돋보이지만,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스바루를 읽은 후의 감상은 불쾌함입니다. 그것은 작가가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바루의 첫 교도소 공연의 관중과도 비슷한 느낌인지도 모릅니다. 질투. 하지만 생각해보면 교도소의 죄수들과는 원인이 다른 데에 있었음을 느낍니다.

스바루에는 중요한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명언이라던지, 일종의 '깨달음'에 대한 것들은 너무 많다고 생각될 정도로 과다사용되었지요. 그런 것들이 거듭 던져주는 현실의 냉혹함과, 극복하며 이겨나가는 모습은 나쁘게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사람들을 몰입시켜놓고선, 정작 문제를 풀어나가고 극복해내는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과장과 허구, 만화스러움이 만연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한껏 폼을 잡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자면 짜증이 슬슬 치밀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스바루의 캐릭터 성향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바루는 항상 혼자이며, 독자적이고 또 빛납니다. 그렇게 때문에 스바루를 중심으로만 스토리는 돌아갈 수 없고, 짧은 간격으로 지나치게 격하게 반복되는 난관-해결의 내용과 패턴은 나중에는 독자의 공감도 얻지 못하고, 스바루의 아픔과 광기조차 가볍고 우습게 여겨질 정도로 반발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스바루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도취가 너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겁니다. 119 구조대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똑같이 '예능인'이라는 입장에서는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작중에서의 스바루와는 달리, 작가의 단점과 한계는 보는 이들에게는 무의식적으로도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맹목적으로 보이는 스바루의 성장은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사실 어느 시점부터 스바루의 성장은 성장이라기보다는 자기능력의 과시밖에 돼지 않습니다. '애초에 잘나서',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서' 라는 이유가 대부분의 문제해결의 중심이 되어버린다면 읽는 사람이 공감할 수 있을까요.

자아도취되어버려 폭주하는 작가와 스바루는 더 이상 독자에게 공감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독자와는 상관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겁니다. 교도소들은 눈앞에 펼쳐진 타인의 자유와 기쁨이라는 감정 그 자체에 울부짖지만, 스바루를 읽는 독자의 마음은 단지 스바루의 성공에 대한 부러움이 아닌 그 '가벼움'에 울부짖게 될겁니다. 특히나 주인공 스바루와 비슷한 사람들일수록.

그래서 저는 스바루를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스바루만의 매력이 강하고 또 재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부터 이야기한 첫 교도소 공연을 전후로 스토리가 망가져버리기 시작했다고 느껴지는군요. 아무리 봐도 남자같아서 의문을 느끼게 하는 '아줌마'와 아무리 봐도 팝가수 마돈나인 프리실라의 캐릭터들도 마이너스 포인트....

마무리의 갑작스러운 전개는 그다지 책망하고 싶지 않습니다. 몸이 아파서였건, 편집부의 압박이 들어왔던, 아니면 작가 스스로 걷잡을 수 없이 뻗어버린 것을 느껴서였건, 그 마무리는 이미 정상적인 마무리라고 하기 어려우니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따를 것이고 우리는 그 이유를 생각해야지 엔딩 그 자체를 놓고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