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사랑해야 하는 딸들 [요시나가 후미, 2002]
노바_j.5
2010. 3. 4. 14:45
여성만화계에서 독자적인 팬층을 구가하고 있는 요시나가 후미.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독특하면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비록 호모섹슈얼한 BL을 다루고 있긴 했으면서도(!).
전체 5부작 (3부는 2편 구성이라 전체 5부, 6편)으로 구성된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2002년도 작품이라고 써져있는데, 도입부에는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 있다. 2부에서도 쑥스러운 감이 있는데, 상황 개그의 설정이라던지, 다른 만화에서 좀 더 정형적인 느낌이 드는 부분들에서는 큰 강점을 보이지 못한다.
어느 순간 돋보이는 담담함이 요시나가 후미의 최대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보통 독특한 설정은 그런 담담함을 보완하고 대비하는 역할을 할 테지만,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서는 단편으로 풀어야 해서 그랬는지, 1~2화에서는 그다지 매끄럽지가 못하다. 파격을 만화 시작과 함께 전면적으로 내놓았다가, 흐름 속에 부드럽게 갈무리하지 못한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이 진정한 파워를 발휘하는 것은, 여자와 남자간의 상호관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남자를 파악해야 하는 굴레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여성에게로 시선을 보듬는 3~5화에 있다. 특히 가장 아웃사이더적인 4화는 유별나다. 시리즈 전체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방점이 여기 있다.
[서양골동양과자점]에서도 어렴풋이 느낀것이지만, 일견 썰렁하게까지 느껴질 요시나가 후미의 그림과 소통 방식은 뭐랄까... 굉장히 직접적이다. 마음에 비추어진 것을 굳이 간략화하거나 심화시키지 않고 그대로 옮겨놓는 듯한 느낌을 준다. 머리 속에 어떤 장면을 떠올려 보라. 어떠한가? 요시나가 후미는 이런 심상에 떠오르지 않는 것들을 굳이 채워넣으려 애쓰지 않는다. 영상작가라면 누구나 기피시할, 반복되는 클로즈업 (일명 '대갈치기') 같은 씬 구성도 애써 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림'체' 자체에서 차별적인 무언가가 없으면서도 그 사용에 있어서 특별함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전체적인 작가의 시선이나 구성 능력과 더불어 이런 담백함에서 기인한다. 연출에 있어서만큼은, 요시나가 후미의 그것은 굉장히 직접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여백 사이로, 그녀의 작가적 역량이 고스란히 스며든다. 여러 면에서, 그녀는 반음, 혹은 반박자 정도 벗어나 있는 듯 하다.
요시나가 후미는, 어찌 보면 요근래 일어났던 일본 소설 붐의 핵심 중의 하나였던, '건조하고 차갑게 식어 있는 담담함'을 굉장히 잘 살리는 것 같다. 한국적인 정서에서의 체념과는 마치 물과 불같은 대비를 느끼는데, 이 간극을 생각해보는 것도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