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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3

어른의 로맨스, 패트레이버 극장판 2 (機動警察パトレイバー2 the Movie)

by 노바_j.5 2014. 9. 23.

문득 패트레이버와 고토 키이치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제는 나도 아저씨 취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작품이 된 것이다. 제대로 볼 수 있는 때가 왔다고나 할까. 예전에 보았을 당시에 감상을 적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게, 패트레이버 극장판 시리즈는 나아갈수록 그 중심인물이 ①특차 2과에서 ②대장 두 사람, 그리고 ③외부의 형사 콤비로, 즉 바깥으로 멀어지며, 그 이야기의 초점도 ①(본편 느낌의) 수사 활극에서 ②중년의 사랑, ③모성애로 성숙해져가는 느낌이다. 오시이 마모루 특유의 철학적 장광설은 이젠 그냥 개똥철학으로 들린다. 공각기동대 시리즈라면 모를까, 적어도 패트레이버에서 그의 철학은 주(main)가 아닌 부(sub)에 머문다.



어찌되었든, 시리즈 중에서도 어른 취향의 테이스트가 가장 잘 드러나있는 듯한… 정확히 말하면 여러가지 면에서 가장 잘 버무려져 있는 느낌의 패트레이버 극장판 2를 골랐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고토와 나구모가 있고, 이즈미 노아는 ‘레이버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숙함을 보여준다. 대장들을 제외한 특차 2과의 대원들도 모두가 ‘젊음’의 다음 단계를 하나씩 밟아가고 있다.

유우키 마사미의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답게 현실성이 뛰어난데, 고토와 나구모, 아라카와, 츠게, 마츠이 형사 등 어른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이 2기 극장판을 보면 각 인물들이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표현의 방법과 그 정도가 아주 절묘하다. 특히 나구모가 고토나 츠게와 1:1로 남겨진 상황들에서 이런 부분이 두드러지는데, 예를 들면 중반부(45분경)의 탐탁치 않은 출동명령에 중간자 입장에서, 동료이자 남녀로서 대화를 주고받는 씬이라던가, 65분경의 츠게와 나구모의 재회 장면 등이 참 인상 깊다. “돌아와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라는 흔한 대사를 이렇게 독특한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은 거의 없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하는 짓(?)을 보면 참 찝찝한 양반이다 싶으면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만의, 억누르는 미학이 있다.



위의 사례들도 그렇고, 나구모와 츠게가 손을 얽는 클라이막스 장면도 그렇고 (이 얼마나 정적이면서도 숨막히게 아름다운 장면인가!), ‘중년 사회인으로서의 현실적인 로맨스’라는 느낌이 가장 강하지만, 실제로는 연애 개념의 로맨스뿐 만이 아닌 각자의 ‘로망’들이 작품 전반에 걸쳐서 그 존재감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극 전반에 흐르는 ‘현실에 부딪힌 츠게와 아라카와 (+ 이즈미 노아)등의 로망’ vs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환상인가’의 구도가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작품을 완성시켜 간다.

뭐, 생각과 다른 현실에 땡깡 부리지 않고 자기 식으로 순응해가는 고토와 나구모 (+ 이즈미 노아)가 어른이라는 이야기다. 만화판의 쿠마가미와 똑같은 전철을 강요당하는 나구모가 참으로 안쓰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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