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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3

바다가 들린다

by 노바_j.5 2007.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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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생각이 나서 [바다가 들린다]를 꺼내 다시보았다.
원래는 극사실주의적인 작품을 보면서 '실사로 만들 수 있다' 혹은 '왜 이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똑같이는 만들 수 없다.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와 다른 점들은 꽤 있지만 그중 가장 중점적으로 '영화의 어법'에 반하는 것은 독백, 나레이션 등의 보이스오버(V.O.)와 과거회상(flashback)이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이 둘은 시나리오를 쓸 때 특별한 기술적 이유가 없다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기피시되는 기술들이다). 좀 더 엄밀히 따지자면 이것은 2D 애니메이션에 어울리는데, 아직은 너무나 미성숙한 나의 개인적인 지론 중 하나는 '2D에서는 자기 자신을 보고 3D/실사에서는 타인을 본다'는 점이다. 간략하게 개념화된 그 세계는 우리의 상상으로 메워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템포가 실사영화보다 빠르기 마련인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라고 보이는데, 이 간략화된 화면이나 캐릭터들은 눈에 훨씬 더 쏙 들어오고 감정의 표현도 직접적이다. 또한 일일이 그림을 그려야하기 때문에 화면 내의 변화/움직임은 자연스럽게 최소화되고, 주목할 필요가 없는 캐릭터는 움직이기는 커녕 미동도 하지 않을 때가 부지기수다.

[바다가 들린다]는 이런 애니메이션의 미학을 최대로 끌어낸 작품같아 보인다. 그 섬세한 내면묘사! 클라이막스에서 단지 그 고성(古成)을 줌아웃시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전달하는 것 역시 인상적이며 실사매체와 비교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각본은 - 원작 소설이 있다고는 하지만 - 너무나도 훌륭하고, 연출 역시 굉장히 독특하고 기발한 곳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도 [바다가 들린다]는 꽤 특별한데, 티비영화용으로 제작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어도 굉장히 여백이 많고, 또 훌륭하다. 그래서 그다지 스토리 자체와는 연관없는 화면들도 많지만, 작품을 너무도 잘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움직임... 움직임(연기)하나하나도 굉장히 섬세하고 여백을 곁들여서 살려지고 있고, 주 인물이 움직이지 않고 있더라도 촛점에서 빗나간 화면 공간에서 무엇인가가 항상 움직인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인 '일상'의 세계를 이렇게 잘 그려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추억 속 이야기'라서 그런지, 빠른 삼입컷들이 (이걸 뭐라고 하더라 -_-) 여기저기 나타나는데 그 순서 역시 시간흐름과 같지 않고 무대전환할 때 보면 약간씩 뒤섞여 있다. 이미 유명한 박스화면 연출 등도 인상적이고, 지방이라는 느낌의 특색 역시 굉장히 잘 살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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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노는 화면에서 나가있고 리카코에게 집중되어 있는 타쿠의 시점.


[바다가 들린다]는 화려한 작품이 아니지만 너무나도 잘 만들어져있다. '고등학교 시절 전후의 섬세한 내면과 주변관계'에 대해서라면 정말 '이 이상 더 좋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여리고 날카롭고 또 무엇보다도 아름다웠던, 사춘기 시절의 모든 추억이 이 작품 하나 안에 녹아 담겨져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바다가 들린다]는 훌륭하다.

성우도 지금보니 토비타 노부오(!)에 세키 토시히코(!)였었다 -ㅁ- 무토 리카코 역의 사카모토 요코는 성우가 아니라 배우인가보다. 다른 출연작이 없는 듯... 참 좋은 연기였는데.

끝으로 감독이 콘도 요시후미인줄 알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남기고 죽었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터무니없는 오해였었다 -ㅁ-;;; 콘도 요시후미는 [귀를 기울이면]이었고, 이 작품 감독은 모치즈키 토모미로 아직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