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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5

울려라! 유포니엄 (響け!ユーフォニアム)

by 노바_j.5 2015. 8. 22.

작가와 제작진에게 경의를.

아아, 잘 봤다. 이렇게 만족도가 충실한 애니를 본 것이 얼마만이었던가.


밴드를 같이 하던 동생이 처음 이 작품에 대해서 알려줬을때에는, 금관악기가 주로 다뤄지는 애니메이션이 나올 거란 기대감은 있었지만, 대부분 그랬듯이 '케이온'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었다. 감사하게도 그 생각은 크게 어긋났다.


'울려라! 유포니엄'은 수수하다. 그리고 그 수수함이 가져오는 리얼리티는 대단하다. 작가 본인이 고교 취주악부 출신의 파릇파릇한 현직 대학생이 아니었으면 잡아내지 못할 만큼의 디테일이 전문적인 분야부터 일상에서까지 녹아있다. 그리고 제작진은 거기에 천착하여 그 표현을 극한까지 (어쩌면 그 이상으로) 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종종 진정한 '명작'이란, 해당 분야의 팬층을 뛰어넘어 어필할 수 있는 보편성과 흡인력을 가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근대의 작품들을 보면 지브리의 숱한 작품들부터, 에반게리온, 카우보이 비밥 등이 그런 '대작'의 계보를 이어왔고, '진격의 거인' 같은 경우도 도중에 무너지기 전까진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었었다.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과도하게 양식화된 작품들보다는 이런 탈(脫) 오타쿠적인 작품들을 선호하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이 참 좋지만... 중후반의 백합 노선 연출은 작품의 온전함을 망쳐놓는 병크라고 본다. 단, 실제로 그것이 작품의 세일즈에 기여하고 제작사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고 확장되는 좋은 작품의 힘을 믿어라!"라고 외치고 싶지만 당장 오늘을 넘길 수 없다면 의미가 있겠는가? 그나마 잠깐의 외도 수준에서 그친 것이 다행이다(...). 이후 BD등에서 대사가 조금 바뀐 버전만 있어도 고마울 것 같다.


사실, '울려라! 유포니엄'은 자극적인 '아니메'적 코드에서는 꽤나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렇게까지 단박에 보편성을 얻으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든 작품이다. 일단 한 눈에 보기에는 기타 대중 작품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며, 특이하게도 아니메 코드 대신 음악 분야에서의 전문성, 혹은 귀의 숙련도 등을 가지고 세심한 줄타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 2~3학년의 환영연주와 해병대 연주부터, 각 연주의 수준 감별, 레이나와 카오리의 재오디션에서 보이는 수준 차 등이 그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이런 쪽의 첫 케이스였던 환영연주가 비교대상(같은 곡, 다른 연주)이 없어서 장벽이 높아보이는 것이지, 이후에 보여지는 경우들에서는 대부분 비교대상을 두어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차이를 직접 구분하려고 하다 보면 이런 쪽으로도 파고 드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쳤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작화 퀄리티와 더불어 (감정선이 최고조를 때리는 12화의 '더 잘 하고 싶어!' 장면은 실로 감동), 그 외에도 언급하고 싶은 디테일이 너무나 많다. 첫 음을 불기 전의 들숨에 대한 표현, 쿠미코가 곡을 흥얼거릴 때의 "타카타카타~" (실제 금관 연주시 혀 사용을 이렇게 한다), 실제 공연장에서의 느낌 (조명의 밝고 뜨거운 느낌이나 미세먼지를 보여주는 연출) 등등... 특히 소리에 대한 디테일 표현은 정말 대단해서, 주변을 조용하게 하고 좋은 스피커나 헤드폰으로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더욱 더 재미있을 것이다. 연주하는 장소에 따라서도 소리의 공간감을 다 다르게 해놓았을 정도! 극 중에 등장하는 '초승달의 춤'같은 경우, 실은 이 작품의 담당 음악가가 작품을 위해서 작곡한 오리지널 곡이라고 한다. 이런 부분에서도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이런 극도로 디테일한 접근과 수수한 태도가 만나서 빚는 시너지는 다른 작품에서 쉽게 맛보기 힘든 감흥을 전해 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런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맞아떨어지면서, 외적 컨텐츠인 '음악'과 더불어 스토리의 중심 축인 '성장과 갈등' 역시 훌륭하게 그려지는 점이다. 있을 법한 고민, 현실적인 갈등. 심지어 쿠미코와 슈이치의 남녀관계에 대한 묘사에마저 그 현실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이런 애니만 보고 자랐으면 그나마 이성에 대한 환타지가 덜 하리라(...)). 초반에는 갈등에도 어느정도 가벼운 터치로 (타키 선생에 대한 불만과 연습부족 등) 시청자들을 분위기에 태우고, 후반으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사실적인 깊이가 묻어나도록 이끌어가는 솜씨도 매끄럽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와닿는다'. 악기 연주나 합주, 특히나 금관악기를 해 본 시청자들에게는 카타르시스(?)가 굉장할 것이다. '울려라! 유포니엄"의 제작사인 쿄애니는 자신들의 일정한 화풍과 퀄리티라는 토대는 유지하지만 컨텐츠 측면에서는 은근히 다양한 시도와 확장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들만의 색깔이나 독자적인 지점을 찾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부디 이후로도 매력적인 행보를 계속 해 나가기 바라며... 리스펙트!!



p.s.

오역이나 뉘앙스 차이를 조금 수정한 자막을 첨부해 놓는다. 원 제작자들의 이름 표기는 바꾸지 않았음.

울려라! 유포니엄 (響け!ユーフォニアム Hibike! Euphonium) [2015] [1080p].z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