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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7

케모노 프렌즈 (けものフレンズ)

by 노바_j.5 2017. 7. 24.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2017년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 케모노 프렌즈. 순위 역주행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돌풍을 일으킨 것이 상당히 의외였었는데,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설정이 잘 먹혔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처음 시청하면서는 저예산 티가 팍팍 나는 애매한 모델링이나 애니메이션(동작) 등이 그 자체로도 상당히 묘해서, '와 이렇게 허술하게?' 하며 슬쩍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소스만 제공해둔 오픈 플랫폼 형식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도 꽤 흥미로웠고, 캐릭터 디자인이나 설정은 단박에 시청자들을 사로잡음과 동시에 이런저런 동물들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심지어 멸종되었거나 위기종인 경우가 많다)와 야리코미 요소를 동시에 얻는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자 근본적인 매력포인트는 역시 의인화된 동물들을 보면서 얻는 따듯한 동심 아닐까. 프렌즈들은 서로의 특징이나 장기를 보면서 '스고이!'하다고 감탄하고 경외심을 가진다. 인간이 다른 점은, 갖고 있는 특기가 '높은 지능'이라는 것 뿐. 제작진은 등장 캐릭터들이 얼마나 인간스러워야 할지, 얼마나 동물 (혹은 어린아이) 다워야 할지에 대한 중간지점을 훌륭하게 짚은 것 같다. 제품에서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등장하는 동물 종들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람들이 얻게 되는 친밀감이 있다. '아, 모르고 지냈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다양한 동물들이 있구나' 하면서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느낌과, 동시에 느껴지는, 그간의 경시에 대한 미안함.

다른 동물들이 살지 못하는 세상에서 인간이라고 잘 살 수 있을까? 『케모노 프렌즈』에서 인간마저도 그들과 같이 (샌드스타에 의한) 프렌즈의 하나로 태어나고, 또한 작중세계에서 멸종의 의구심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도 동물들과 같다'라는 동질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그런 면에서 세룰리안이 은유하는 것은 무언가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람 내면에 있는 (직접적인 의도가 없더라도 모든 것을 서서히 파괴하는) 어두컴컴하고 맹목적인 마음... 혹은 '기적/자연'의 샌드스타와 대비되는 '인위(人爲)' 같은 것 아닐까.

좀 더 진지하고 무거운, 현실세계의 관련작 '블랙피쉬'

과학자들은 인간본위적이기 때문에, 굉장히 오랫동안 동물에게는 이런저런 마음이나 지성, 능력 (예를 들면 개가 웃을 수 있다던가) 등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인간이 정립한 '과학'의 기준에 맞추어 완벽하게 납득할만한 방법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동물들과 가까이 지내본 사람들은 그들과 인간이 그리 다를 바 없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정이 들면 아껴주고, 소중한 것은 보호하며, 잃으면 슬퍼하고, 심지어 복수까지도 한다. 그것이 단순히 유전자에 따르는 것이든 종족보존을 위한 것이든. (심지어 그렇게 따지면 인간과 더더욱 다를 바가 없다.)

모두가 거대 세룰리안과 싸우는 클라이막스에서 가슴이 뭉클한 것은, 순수한 그들이 '소통'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먼저 손을 내밀어, 다같이 인간을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미안하지 않은가? 애초에 그들의 생태계를 파괴하고 멸종으로 내몰았던 것은 인간인데도.

작품의 히트에 힘입어 동물원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앞으로 동물원이라는 시설 자체에 대해서도 한번 더 생각할 순서가 올 듯 하지만...『케모노 프렌즈』로 인해 생겨난 동물들에 대한 관심이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프렌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