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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울려라! 유포니엄 3기 - 명작을 명작으로 마치기 위한 관철 (스포있음)

by 노바_j.5 2024. 7. 21.

처음에 이 작품을 틀고는 "허, 참..." 하고 헛웃음 비슷한 것이 나왔다. '성공한 프랜차이즈 작품'으로서의 위풍당당함 이랄까? 초장부터 제작비용이라던지, 스폰서에 대한 눈치라던지, 그런 우려들 없이 양껏 투자해서 여유롭게 제작했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다 보고 찬찬히 돌아보며 느끼는 것은, 이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 특히 이번 3기가 쿄애니 직원들에게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그에 대한 뭉클함이다.

 

총직원의 40%가 넘는 사상자와 영구 소실된 자료들... 일본 애니사(史)의 역대급 비극이었던 쿄애니 방화 사건이 일어난 것이 2019년 7월 18일의 일이고, 『울려라! 유포니엄』 3학년 편의 애니화 발표는 고작 그 한달 전인 6월이었다. 이때까지 쿄애니는 이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를 줄기차게 뽑아내고 있었는데, 2015년~2019년 사이에 두 편의 TVA와 3편의 극장판을 뽑아낼 정도였다. 화재 이후 재기가 어려울 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다시 힘을 모아 작년에 나온 것이 2학년 마지막 작품인 '앙상블 콘테스트' 편, 그리고 대단원을 맞이하는 것이 3학년 이야기인 이번 3기 TVA다. 자료를 검색하다가, 마지막 전국대회 관객석에 이때 사망한 스태프들이 나온다는 나무위키의 각주를 보았는데, 추가정보는 찾을 수 없었지만 분명 이 정도의 마음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가 뭐래도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는 근 10년 간의 시기를 대표하는, 쿄애니의 간판 프랜차이즈였으니까.

 

작품 얘기로 돌아가서, 가장 논란이 된 마지막 오디션에 관해서는, 쿠로에 마유라는 캐릭터가 워낙 궁금해서 위키를 살펴보다 의도치 않게 결과를 미리 알아버렸는데, 막상 애니메이션 상에서는 결과가 또 그 반대였어서... 여러모로 충격이었다.

 

예전의 「소니 보이」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스토리 상 '형편 좋은' 엔딩을 내어주는 것은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만족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현실성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면 이는 곧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기만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상을 추구하거나 선택을 내렸을 때에는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이 있기 마련이다. 『울려라! 유포니엄』은 아주 개인적이고 아기자기한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큰 틀에서 보았을 때에는 고교 3년간의 시간에 걸친 개인(과 주변인물들)의 아주 현실적인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작품을 보면 대중적인 매력도 강하기 때문에 반발하는 팬들의 마음 역시 이해가 간다. 그러나 ~특히 쿄애니의 입장에서~ 이 작품만큼은, 그렇게 마무리지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의식의 엄격한 관철과, 그로 인한 '완성된 명작'의 자리에 올려주어야 한다는... 그리고 이것은 작중 쿠미코와 레이나의 결단과 그대로 일치한다.

 

시리즈 전반에 흐르는, 현실에서 오는 씁쓰름한 분위기도 이걸로 온전히 유지되는 셈이지만, 반면 작가주의적 시점에서 보자면 쿠로에 마유의 이야기가 너무 늦게 나와서, 전개를 위한 도구처럼 쓰여졌다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는다. 결과적으로 대단하기는 했지만, 매끄럽지는 못했다. (비평적인 면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이미 완벽하지는 못할 갈림길에 처해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 동안 일어났던 현실에서의 일들로 인해, 여기에서 쿠미코의 오디션 낙방으로 기울어지는 쪽으로 소위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을까.

 

예컨데, 내가 관람 초기에 작품에서 느꼈던 정성과 물량 투자는, 이미 성공이 확실시된 프랜차이즈여서 여유와 자신감이 넘쳐 그랬던 것이 아니라, "이 작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최고의 모습으로 완성시키겠다"는, 쿄애니의 혼과 의지가 서린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수수한 본작의 기풍에는 과하지 않은가 싶을 정도로 화려한, 혼을 갈아넣은 듯한 작화. 나는 인상적인 화면이 나오면 스샷을 캡쳐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 정도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1프레임용으로 버리는 그림이 많다는 점에 깜짝 놀랐다. 특히 후반 화들은 비록 회상신이 많다곤 하지만, 제작진의 결의가 느껴질 정도.

 

그럼에도 분량 조절의 문제인지, 이번 3기는 화려한 연주 장면이 많이 나온 편은 아니지만, 시리즈의 시작부터 연주에 관해 진심이었던 걸로 놀라웠던 작품이라 문제의 마지막 오디션을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했는데... 1번의 연주는 칼로 잰 듯 반듯하지만 강약이라든지 소리의 표현에 있어서 약간은 단조롭게, 2번의 연주는 소리의 표현에 더 강점을 두었지만 기본적인 타이밍 등을 약간 느슨하게 하는 식으로 차이를 두었다. 여기에서도 쿠미코의 소리를 알아듣는 몇몇 멤버들은 그것을 인지하고 쿠미코 쪽으로 손을 들어주는 연출이 나오는데, 이렇게 해서 동률이 나온다는 것은 '두 사람의 실력이 확연한 격차를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합주에 있어~ 근소우위를 보이는 것은 명백한' 선을 잘 그려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 부분은 2년 전처럼 부원 전체를 납득시키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았을 것인데, 그 결과는 2년 전의 (격차가 분명했던) 레이나와 카오리의 경우와 대비되는 것이 재미있다.

 

2쿨로 하기에는 퀄리티의 유지나 스토리의 밀도 면에서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최후반 쿠로에 마유의 이야기나 레이나의 선택 등에 관한 것들이 음미할 시간 없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는 인상도 있다. 비록 최선을 다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도 1년 간의 이야기를 1쿨에 담기에는 너무 압축된 거 아닌가 싶어서, 좀 더 보고 싶은 마음과 맞물려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에 관해서는 전반적으로 힘이 들어간 느낌인데, 조금은 작위적인 면이 강하지 않았나 싶다. 계속 인물들끼리 교차하는 장면이라던가... 작품의 시그니처(상징적) 명장면인 다리위의 질주 장면도 오마주의 느낌보다는 2년 전과 분명한 차이를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고. 백합적인 요소에 관해서는 여전히 친숙해지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정도는 된다. 사운드 적인 측면에서는 여전히 훌륭한데, 이전까지와의 작품들과는 약간 다르게 등장인물들의 연주가 아닌, 배경 음악이 드라마틱한 부분에서 어우러지는 모양새가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가슴에 박힌다.

 

그 외에 캐릭터들의 성장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참 좋았다. 성인이 된 OB들의 모습이라던지, 가장 천방지축이었던 하즈키가 외려 가장 어른스러워 졌다던지. 음악이나 인간관계 얘기에만 초점을 두기가 쉬운데, 사실 쿠미코의 진로 고민에 관한 내용은 작중 비중도 크고, 그 자체로도 굉장히 인상적인, 3기를 관통하는 플롯의 한 축이다. (이번 3기를 보면서 올바른 리더나 인간상에 대한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오히려 연출이나 연기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힘을 뺀 이 쪽이 정말 잘 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특히 쿠미코가 부모님께 발표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눕는 장면은 참 :)

 

참고로 1기가 나왔던 2015년에 고 1이었다면 실제로 올해에 20대 중반일 테니, 후일담으로 넘어와서 현재의 타임라인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이 (엔딩 시점이 교사 3년차라고 하니 더욱) 묘한 뭉클함을 자아낸다. 시간을 같이 보냈구나 하는 느낌이랄까. 3기의 프롤로그 부분 역시 이 현재의 쿠미코 시점인데, 어쩌면 이번 3기의 응축됐던 스토리도, 20대 중반이 된 시점에서 고3 시절의 일들을 회상한다는 느낌으로 보면 좀 더 설득력이 있을지도.

 

하... 이러니 저러니 해도, 10년의 세월을 거쳐 하나의 큰 작품이 대단원을 맞이했다는 감흥은 특별하다. 언뜻 '이게 대작이라고?' 하게 되는 부분까지도, 참 『울려라! 유포니엄』 스럽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