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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1

감상 :: 노인 Z

by 노바_j.5 2005. 8. 11.
"노인 Z"는 복지후생성에서 주택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개발한 간호침대가 알고보니 기술후원사에서 극비개발중이던 슈퍼컴퓨터 활용의 일환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실용테스트 중에 일어나는 일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오오토모 카츠히로 감독의 참여작품으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1991년 작인데, 아키라 같은 스케일은 느껴지지 않지만 여러모로 상당히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파멸'이라는 소재와 캐릭터 구성 등은 특히 그렇지요. 가장 큰 차이점은 역시 '라이트함'입니다. ('가벼움'이라고 말하면 왠지 부정적인 느낌이 커서 말이죠.) 경쾌&유쾌하고, 어둡거나 무겁지 않습니다. 또 이 노인 Z에서의 '유쾌한 시가지 파괴 진행'은 메모리즈 2편 '최루병기'로 이어집니다.

'노인 Z'는 평가가 나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주제의 애매모호함이고, 또 거기에 전면적으로 드리워진 '파멸'이라는 소재 때문입니다. 스프리건을 제외한 오오토모 감독의 주요 참여작을 다 본 것 같지만, 도대체 이 양반의 '파멸'에 대한 집착은 이제 혀를 내두르게 만듭니다. 학을 띠었다, 라는 느낌일까요. 물론 이런 면도 필요하지만, 일본 애니계의 거성 중 하나로 추앙되는 오오토모 감독이 실은 일본 애니가 90년대 들어부터 하향세를 달리는 현상의 숨은 공로자 중 한 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노인 Z의 이야기는 '파멸'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라고 생각한다면 오버일까요.

물론 이 애니가 '이야기하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노인이나 약자에게도 엄연한 감정과 마음 등이 존재하고 그들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이라던지... 하지만 모든 것들은 그저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맙니다. 여러가지 문제에서 핵심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인공적으로 재현된 할머니의 인격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작품 내의 Z-001이 폭주하는 것 같아도, 사실 아이작 아시모프의 그 유명한 '로봇 3원칙'에 거의 고스란히 따르고 있다는 거죠.

저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보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캐릭터 디자인을 맡은 '에구치 히사시'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노인 Z의 캐릭터들은 노인과 소위 '어른들', 그리고 기계를 전면에 내세워서 고루한 느낌이 없잖아 있지만, 이 작품 내의 캐릭터들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특히 주인공 하루코씨의 매력은 뭐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 이 작품을 보면 오오토모씨의 파멸에 대한 욕구(?)와 함께할, '대중성'과 타협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가벼운 터치의 개그성 분위기와 함께 그 선봉을 맡고 있는 것이 주인공 하루코라는 캐릭터입니다. 스토리나 성품적인 면에서의 하루코는 섹시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녀의 다소곳하면서도 강인한 성격과 더불어, 그녀의 외모 역시 엄청나게 건강(?)합니다. 그녀가 풍기는 섹시함과 매력도 이 '맞물림'을 중심으로 발생하는데, 에구치 히사시씨는 이런 하루코를 훌륭하게 그려냈습니다.

연출, 스토리, 각본 등등 대부분의 구성, 기술적인 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작품입니다. 특히 '할머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동은 가슴을 찡~하게 하더군요. (감동의 주 원천이 이 '할머니'란 점이 또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죠) 오오토모 감독은 아마, 하루코의 미래 연애사항이라던가 (작품을 보면 후생성의 아저씨랑 이어지는 분위기인데 말이죠), 기계 할머니에 대한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겨놓은 것 같습니다.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의 여러가지 참신한 시도 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나 묘~한 리얼리티가 주는 매력이 독특하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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