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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0/1996

겐지의 봄 (イーハトーブ幻想~KENjIの春) [1996]

by 노바_j.5 2009. 7. 30.
일본의 유명 문학가인 미야자와 겐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그의 삶을 비추는 중편 애니메이션 작품. 'Spring and Chaos'라는 영어 제목은 작중에도 등장하는 그의 시집 이름('봄과 수라')이며, 원 제목 '이하토브 환상 - KENjI의봄'의 '이하토브'란 미야자와 겐지의 고향인 이와테를 그가 익힌 에스페란토어로 바꿔 쓴 것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들 속에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이름이라고.)

애니메이션의 정수는 심상의 현화... 즉 마음의 형태라던지 어렴풋한 느낌 등을 구체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점이라는 생각이 거듭 쌓여가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을 보게 된 것은 모종의 인연이 닿아서였을까? [겐지의 봄]은 언어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보이는 대로 느끼는' 한 편의 애니메이션 시(詩)이며, 영상/음악적으로도 다양한 표현을 보여준다. 대중적인 터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성숙한 주제의식을 접목시키는 가와모리 쇼지 감독 특유의 감각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연대적으로는 [마크로스 플러스]와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마크로스 플러스]로 얼굴을 내민 그의 작가의식이 [겐지의 봄]으로 가장 강렬하게 표출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스케일이 작기 때문에 여러 모로 쉼표(,)같은 작품이지만, 참 많은 것이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자연주의적이고 낭만(?)적인 (불교적이기도 한) 가와모리 쇼지의 사상은 이후 [지구소녀 아르주나]에서 더욱 세세하게 드러나지만, [지구소녀 아르주나]가 어떤 '친절한 해설' 내지는 '과학적인 설명'같은 느낌이라면 [겐지의 봄]은 위에도 언급했듯이 좀 더 감성적이고 함축적인, 한 편의 시 같은 작품이다. 미야자와 겐지의 삶의 궤도와 그 속에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그의 인물 상을 담아내고자 하였는데, 그 순수한 모습에 동화되어 몰입하며 볼 수 있었다. 1년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기에 더욱 더 그랬을까? 도둑질하던 학생을 이끌고, 온갖 풍랑에 흔들리면서도 '어디까지고 똑바로 걸어가는' 겐지의 모습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다. 마치 이 작품의 모든 것을 담아낸 듯한 시퀀스였다.

'혼돈'을 가득 끌어안고 산다는 것, 온 몸으로 '수라'를 느낀다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있다'는 것의 무엇보다 생생한 체감이자 반증이다. 그가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이며 '이것은 변합니까?'라는 자문을 거듭하다 마지막에 부딪혔던 '이것'이란, 아마도 끊임없이 그의 이상을 좌절케 하는... '세계를 움직이는 시스템'이란 것에서 느껴진 일종의 '벽'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는 무아지경의 끝에 삶과 죽음, 차가움과 따듯함이 하나임을 깨닫고, 타(他)와 하나가 되어 승천한다. 모든 이들이 바라는 진정한 행복이란 결국 하나로 귀결되리니... 깨어난 그의 육신은 비록 혼자였으나 정신은 이미 통(通)했으리라. [겐지의 봄]은 이야기를 마치며 넌지시 이야기한다. 미야자와 겐지, 그는 필시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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