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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0/1996

철완 버디 (OVA, 1996)

by 노바_j.5 2012. 10. 30.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기동경찰 패트레이버』와 『철완 버디』를 보면  유우키 마사미는 참 독특한 만화가다. 지극히 현실적인 세계관 속에 한 가지 핵심적인 만화적 요소를 투입시키며 살짝 비틀어주는데, 사고회로라고 해야 할지, 그의 상상력은 굉장히 촘촘하고 논리적이다. 그 반대급부인지는 모르지만, 유우키 마사미의 작품들에서는 일본 만화에서 자연스럽게 보이는 만화적인 오버스러움이나, 감정적인 분위기의 기세몰이, 말초적인 재미가 전무하다 해도 될 정도로 결여되어 있다. 그가 독특하고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어쩌면 이런 소재 자체의 만화스러움이 그의 덜 만화스러운 작풍을 보완해주고 있는 걸까. 패트레이버와 마찬가지로, 철완 버디 역시 그 만화적 소재는 그야말로 만화적이다. 몸에 착 달라붙는 수트를 입는, 변신소녀 기믹을 가진 미녀 외계인! 


하지만 아무리 서비스정신이 넘치는 노출씬이나 므흣한 구도를 보여준들, 주인공 버디-시폰-알티라는 소위 말하는 꼴릿함/두근거림/모에 등 과는 백만광년 가까이 떨어져 있다. 마치 『공각기동대』의 소령님과도 비슷한 부분.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다. 사실, 특유의 섬세한 느낌에 더불어서 난 이 작가가 여자인줄 알았다(...).


1996년에 나온 OVA판은 차세대 스탭들의 육성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고 하는데, 비록 짧기는 하지만 작품 자체는 굉장히 내외적으로 잘 만들어진 수작이며, 특히 젊은 스탭들의 의욕 덕분인지 여러 군데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짧은 순간에도 풍부한 표정 변화를 보여주는 모습이나, 옷의 미세한 주름 표현, 오오타니 코우의 - 『하이바네 연맹』등에선 상상도 하지 못할 - 재즈 풍의 에너지 넘치는 OST도 인상적이다.[각주:1] 에피소드마다 기합이 들어간 액션 신도 훌륭하다. (덧붙여 3화 초의 수영 장면에서는 마크로스 플러스가 생각나는데 무언가의 연관성이 있는건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미츠이시 코토노의 연기. 평소의 '기운 센 누님' 역할과는 굉장히 다른데, 아무래도 보이스컬러가 성숙한 느낌인지라 처음엔 약간 묘하다고도 생각되었으나, 결론적으로는 선이 굵고 투박한 느낌의 버디 캐릭터를  완성시킨 건 그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96년 전후 그녀의 다른 연기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무엇보다 독특했던 것은 그녀의 연기가 굉장히 '인간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듣고 있다 보면 요즘 성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정형화된 도식에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다채로운 면과 세세한 결, 다양한 폭을 아우르는 연기. 12년 뒤에 나온 Decode에서 버디 역을 맡은 치바 사에코의 연기도 굉장히 비슷한 흐름으로 들리는 것을 보면 상당히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 (아니면 버디라는 캐릭터 자체가 요즘의 천편일률적인 캐릭터들과는 다르기 때문일까?) 


만화책은 아쉽게도 판매 중단이라고 하지만, Decode를 보면서 12년간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하다.



** 철완 버디의 히스토리를 차근차근 알고 싶다면 표도기님의 글로(링크) **



  1. 찾아보니 원래 재즈쪽으로도 상당히 공부한 듯 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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