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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0/1998

요코하마 매물기행 (1998)

by 노바_j.5 2007.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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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슬픈 일이 있어서 분위기가 가라앉아있던 참에, 아껴두던 요코하마 매물기행을 봤습니다. 우선은 98년도 두편만...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참 많이 위안이 되더군요.

우선 눈여겨 볼 점은 엄청난 퀄리티입니다. 두편만 만들어서 그런지... 특히 파스텔톤의 포근하고 풍성한 색감은 일품입니다. 아마 역대 최고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선 역시 조잡하거나 하지 않으면서 뭉툭하고 부드러워서 보기 좋았습니다. 그림체가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움직임 역시 세세한 곳에까지 배려한 것이 돋보이고, 아주 자연스럽고 부드럽습니다.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정(靜)과 여백의 미를 정말 잘 알고 또 살린 작품이라고 봅니다. 한 편에 등장하는 성우는 4명에 불과하고, 소리도 절제되어 있습니다. 롱샷이나 관조적인(마치 편안히 훔쳐보는 듯한) 샷이 주를 이루면서, 가끔씩 짧게 짦게 알파 등의 정겨운 얼굴에 클로즈업을 시킬 뿐입니다. 정면(시청자)을 직접 바라보는 샷도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편집도 한 장면 한 장면의 길이가 길고, 미려한 빛의 광도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이 인상적입니다. 일반적인 작품이었다면 답답했을 테지만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그 통일된 감성과 뛰어난 퀄리티 덕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어서 같이 쉴 수 있게 해줍니다. 덕분에 통상적인 흐름에 어긋난 진행이 거슬리지도 않고, 중간에 한번씩 들어가는 뮤직비디오 시퀀스 역시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알파의 다양한 모습 -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 등 - 을 지켜보는 것도 보는이를 지루하게 하지 않고, 쏠쏠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구심점은 역시 주인공인 알파인데, 이 알파라는 캐릭터가 또 참 독특합니다. 사이보그 캐릭터 중 알파만큼 인간같은 사이보그는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방향으로만 설정을 접근시켰다고 보이는데, 이 작품에서 사이보그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이처럼 순수한 존재로서의 의미만을 부여받습니다. 알파는 기계이면서도, '초월적인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되는데, 이 초월성은 재미있게도 다른 로봇들처럼 신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이 더 큽니다. 알파는 때묻지 않았고, 또 나이를 먹지 않고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알파는 기계이기 때문에,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체의 '욕망'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탐욕, 식욕, 성욕, 불로불사까지... 그래서 욕심이나 조바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움이나 안타까움같은 것들은 잘 알고 있는 존재이고, 눈물을 흘릴줄도 압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동화적인 풋풋한 상상력입니다. 카메라의 눈깔이나 작동방식, 카라멜 모양의 메모리카드(?). 그리고 '혀'(...).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요소들로 풍부한 작품입니다. 배경이 되는 알파의 동네와 주변도 그렇고, [요코하마 매물기행]은 이런 식으로, 일반적인 미래적 요소들을 거꾸로 아날로그적인 발상으로 발전시키는데, 포근하고 동화적이면서도 어딘지 친숙한, 묘하면서도 훌륭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상투적으로 보이면서도 신선한 것은 이런 '거꾸로 접근하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스토리 틀이 더 잡힌 1화가 더 매력적이었던 것 같군요. '아직 천몇백장이나 남았다'에서 '적지 않다'로 생각이 바뀌며 마음이 편해지는 알파를 보면 겉으로는 작아보이는 그 표현의 차이가 사실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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