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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5/1985

은하철도의 밤 [1985]

by 노바_j.5 2010. 10. 22.
[은하철도의 밤]은 사후 일본의 국민적인 동화작가로 추앙받은 미야자와 켄지의 대표적 단편이며, 이후 [은하철도 999]에 영감을 주기도 한 작품이다. (일본의 서브컬쳐 분야를 접하다 보면 드문드문 '죠반니'라는 이름이 언급(패러디)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아마 [은하철도의 밤] 속 주인공인 죠반니가 아닐까 싶다.)

작가의 삶을 비춘 [겐지의 봄]에서도 드러나지만, 미야자와 겐지는 다른 듯 닮은 듯한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는 '접경'에 천착하고 있는 듯 하다. 적막함에서 동시에 느껴지는 평온함과 두려움. 꿈과 연옥과 은하수 등이 포개어진 4차원의 세계. 밝으면서도 음울한 '고독'으로 귀결되는 이 독특한 세계는, 마치 현실의 거대한 벽 앞에 절망하면서도 마음 속의 이상(理想)을 포기하지 않은 작가의 내면적 결정체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애니메이션이 '형식' 자체로 이런 미야자와 켄지의 감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80년대의 애니메이션이라서 느껴지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아닌, 유럽의 작가주의적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질감. 변화가 거의 없는 인물들의 표정과 동그랗게 뜬 눈. 고양이라는 동물이 주는 섬세함과 고고함,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화적 디자인... 소리의 사용도 굉장히 독특해서, 효과음과 음악의 경계가 흐릿하고, 소리의 다듬새가 여타 일본애니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음역이나 음량도 적당히 중앙으로 끌어모으는게 아니라 역으로 그 폭을 극대화시켜 놓았다.

생각 1.
이지메 당하는 나.
그런 나를 괴롭히지 않는 유일한 친구...의 죽음길 동반 (* 죽음 = 궁극적 고독)
하나 밖에 없던 친구를 잃고 거듭 혼자 남겨진 나.

고독의 극을 달리며 그 끝에서 슬픔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키는  [은하철도의 밤]은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지만, 미야자와 겐지를 '국민적 동화작가'라고 생각하면 야릇한 기분이 든다. 신호등 음악으로 쓰이는 '토오량세'만 봐도 그렇긴 하지만... 어릴때부터 이런 음울한 정서에 노출되는 것이 과연 좋은 걸까? 아니면 전통 정서 교육 차원에서 바람직하다고 봐야 하는걸까?

생각 2.
일본은 미야자와 켄지를 확고히 브랜드화 시켜놓았는데, 당시의 한국 작가들을 찾아서 이렇게 멋지게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내놓으(려)면... 하는 생각이 든다. 보고 있으면 상당부분 ~ 문체랄까 시대적 느낌이랄까 ~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일제강점기 즈음의 한국 작가들이 지금 대중에게 얼마나 읽히고 알려져 있는지 궁금하다.


p.s.
이런 느릿하고 고요한 느낌이 괜찮았다면 타무라 시게루의 [은하의 물고기], [고래의 도약] 등도 추천할 만 하다.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어둡지 않고 나긋나긋한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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