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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EDEN - It's an Endless World! - (1997~2008)

by 노바_j.5 2013. 1. 7.

엔도 히로키의 SF 만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통합사념체 → 새우주 창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작가의 학식이나 고찰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내용 면에서는 전쟁, 갱, 테러 이야기와 그 정치적 역학관계가 주를 이루면서 시종일관 인간의 밑바닥을 훑는데, 탄탄한 전개와 설득력 덕분에 꾸준히 나오는 성과 폭력 묘사도 단순히 말초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훌륭한 SF/사이버펑크 작품의 척도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있다면, 「EDEN」은 - 그 깊이나 결론은 차치하고서라도 - 적어도 그 탐구의 끈을 놓지 않는, 진지하고 끈질긴 추적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인조인간이나 유전자조작(?) 등의 미래 기술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라고는 해도, 「EDEN」에서 그런 테크놀러지적인 부분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실제 사람들의 생활상 등에서 비춰지는 모습에 이런 기술적 진보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않으며, 외적인 내용으로 보면 지하세계(?) 이야기에 가까울 것이다. 이 작품을 SF/사이버펑크로 만들어주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작가의 주제의식에 있다.


작품의 구성은 주인공 부자 2세대에 걸친 시간 동안의 일화들을 보여주는 모듈식 구성으로, 각각의 이야기는 각자 따로 놓고 보아도 될 정도로 독립성을 가지고 있고, 등장 인물들의 명멸이나 조합, 배역까지도 자유롭게 이루어진다. 게임으로 치면 스퀘어의 사가 시리즈 (「로맨싱 사가」, 「사가 프론티어」시리즈 등) 와 비슷하달까[각주:1]. 여기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작가가 보여주는 일종의 '공정함'인데, 사람의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부분들을 강조하는 동시에 도덕이나 가치관 등에 있어서는 섣불리 재단하거나 편을 가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덕분에 인간의 흥망성쇠나 허무함, 세상의 부조리함 등에서 오는 현실적인 감상을 전해다 준다[각주:2].


문학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은「기생수」 등의 만화들이 그래왔듯이, 「EDEN」은 '일본 망가'라는 특유의 관습이나 유행에 물들지 않고, 비록 그 스타일이 세련되지 못할지라도 내면의 치밀하고 뜨거운 작가의식으로 이야기를 거칠게 돌파해나가는 힘이 느껴진다. 매끄러운 정제미에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지만, 어쩌면 그 투박함 때문에 독자에게 쉽게 예측당하지 않는 생동감이 살아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작품성이 느껴지는 만화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보다 널리 알려질만한, 뛰어난 작품이다.




  1. - 특히 6권부터 2권 반에 걸쳐 나오는 페드로와 마누엘라의 이야기는 따로 떼어서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수준. [본문으로]
  2. - 덤으로 등장인물들이 워낙 잘 죽어나가서 '엇 설마 얘도?' 싶은 생생한 긴장감이(...). 이런 면모들 때문에 읽으면서 특정 캐릭터의 비중이나 역할 등을 함부로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이야기가 끝나서야 그런 규정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은 마치 삶과도 닮아있고, 작품으로서는 신선한 쾌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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