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가지) - 안달루시아의 여름'의 이야기는 실제 스페인 남부에 위치하는 안달루시아를 배경으로 일어납니다. (사진을 보니 실존 지역을 그대로 갖다 놓은 것 같더군요)
형제와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안달루시아의 여름이 돋보이는 점은 그 현실성에 있습니다. 실제 '삶'이란 것은 그렇게 오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살아가는 것이란 - 특히 어른에게 있어서 -, 개개인이 어떻든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환경,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덤덤함을 갖고 있는 것이니까요.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그런 '덤덤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싸이클링'의 흐름을 타고 흐르는 45분의 짧은 스토리는 일반 작품들처럼 강렬한 감동을 끌어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어디 흠 잡을 데는 특별히 없지만... 안타까운 점이라고 할 수 있네요.
솔직히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어떤 흥행을 노리고 만든 작품이라기보다는 우선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고, 또 컴퓨터 그래픽의 실험이 굉장히 돋보입니다.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튀지 않지만 그 활용도는 엄청난 것 같더군요. 사실 이 작품을 보면서 제작측이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컴퓨터 그래픽의 활용과 가능성'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이 작품은 '디지털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수의 움직임은 표현하기 어려운 작업일 수 밖에 없는데, 이 작품은 싸이클링 선수들과 군중의 모습에서 그 점이 두드러집니다. (이미 디즈니의 뮬란 시절에 나온 기술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툰 렌더링의 적절한 사용에 의한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 그리고 레이스 막바지에 임하는 선수들의 극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한 거친 그림과 애니메이션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구요.
싸이클링이란 스포츠 종목을 얼마나 심도 있게 나타냈는지도 경이적이었습니다. (원작이 미리 따로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가장 아름다운 볼거리는 결혼식 직후의 춤이었고, 일본적인 색이 (당연히) 섞이긴 했지만 정말 스페인 남부와 외국인들의 풍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캐릭터들의 성격과 언행도 굉장히 산뜻했습니다. 사실 싸이클링에 너무 파고 든 점과 더불어, 이런 문화적인 이질감 때문에 최적의 연출을 끌어내지 못한 데에서 마이너스 효과가 온 것 같습니다만...
스토리의 호흡도 인상적인데, 이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는 컴퓨터 그래픽의 시각적인 효과가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클라이막스가 끝난 후인, 레이스가 끝난 후의 '여운을 풀어가는 모습'에 있습니다. (사실 안달루시아의 여름은 여러모로 '아니메'라는 일반적인 정체성을 버린 작품입니다.)
고향을 등지고 떠난 이유... 하지만 고향에서는 이겨야 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비록 감정의 바닥을 때릴 수는 없지만, 현실성과 진실함이 첨가된 이 짧은 드라마는, 그 진실된 감동의 무게와 깊이, 진중함에 힘입어, 아마 오랫동안 그 생명을 꺼트리지 않을거라 생각됩니다.
p.s. 스탭롤을 보면 한국 인력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는데, 다시 한번 기초적 기술들은 훌륭하다고 느껴지더군요. 새삼 안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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