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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0/2000

프리크리 (FLCL)

by 노바_j.5 2008.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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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오타쿠들이 꾸는 꿈. FLCL
[프리크리]는 그 종잡을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흥미롭긴 해도 딱히 봐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뭐랄까... 솔직히 어둠의 루트를 통해서 구했는데, 사실 시청에 구미를 당긴것은 동영상의 엄청난 퀄리티였습니다. 작품 퀄리티도 좋은데, 화질(1024x768)과 음질(2채널에 448Kb)이 차세대미디어급이더군요.

- 이하 존칭 생략 -

먼저 느껴진 것들은 이랬다: 보는 사람까지 오타쿠를 만들어버리는 반박자 빠른 편집, 묘하게 김빠진 캐릭터들, 그리고 난무하는 선정성(이건 갈수록 심해지는 듯).

그리고 그 전체적인 느낌은 - 심심한 동네나 꾸밈없는 미술연출 등에 더욱 힘입어 - '황량함'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에너지. 첫 에피소드를 마치고 흘러나오는 엔딩롤을 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정말 자유로운 느낌으로 만들었구나.'라고. 뭐랄까. 정말 편안한 그런 느낌이랄까. 다른 면으로 보면 정말 가이낙스라는 회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이런 순수 애니메이션적인 방면으로 심혈을 기울이는 회사는 가이낙스 이외에 찾기 어렵고 (그래서인지 볼때마다 감동해버린다), 비록 시청자들을 기만했다지만 그 덕분에 이렇게 능력있는 사람에게 기회도 주고 실험적인 (하지만 건성은 아닌) 작품도 만들어보고 하는것 아닐까.

내가 느끼는 [프리크리]는 '오타쿠 중심'이지만 그 이전(그리고 이후)까지의 어떤 오타쿠물(物)과도 궤를 달리 한다. [프리크리]를 통해서 오타쿠들이 '자유롭게 숨쉬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런 느낌을 준다. 마치 잠을 잘 때의 편안한 호흡과도 같이. [프리크리] 내에서 캐릭터들이 반영하는 것은 일반인이 아니라 굉장히 '원형적인' 모습의 오타쿠성(性)이다. 뭐, 카몬같은 경우야 대놓고 오타쿠 그대로이지만...-_-;(제작진의 모습 아닐까) 비정상임에 더불어 거리낌 없는 -그래서 묘하게 자연스럽다고 납득해버리는- 관음증적 장면들. 부담스럽게시리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지만, 거리낌없이 가슴을 부비대고 '몽실몽실'하는 것에도 전혀 무신경한 (혹은 밝히는;) 예쁘고 귀여운 여자들. 어른들의 그 행복한, 마치 갓난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열린 욕망의 세계. 그것이 [프리크리] 아닐까.

매 화마다 다양한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차용하며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미학의 총집합적인 모습도 좋지만, 내가 [프리크리]에서 흥미롭다고 느낀 것은 스토리의 진행이다. 큰 줄거리는 다양한 장르들 중에서도 성장물과 로봇물의 성향이 가장 큰데, [프리크리]는 정확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스토리 구조는 없다. 단지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진 문화의 '코드'들을 따라 만들어지는 감정선과 분위기를 따라 일반 이야기'처럼' 흐른다는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무슨 소리냐면, 매력적으로 생긴 여자애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아 저 애는 비중이 있거나 주인공에게 이런이런 감정을 갖고 있겠다' 하는 생각들. 그저 슬픈 구도의 화면을 연출하면 사실상 내용에는 별 뒷받침할만한 것도 없는데 '아 슬프다. (+ 이런이런 사연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그런 도구, 관습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프리크리는 그렇게 '이야기'가 아닌 '감정선'을 타고 흐른다. 남는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의 활공.

그렇기에, 내가 보면서 정리한 생각은 적어도 구태여 심각하게 이야기를 짜맞추거나 해석해보려 노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너무 '[프리크리]스럽지 않은' 행동 아닌가! 이 부분은 또 동시에 [프리크리] 최대의 미덕이기도 하다. 그냥 뒤끝없이, 아무생각 없이 즐거운 기분만 만끽하고 나가게 해준다는 것. 그러면서 그 와중에도 자기 챙길 감성은 다 챙겨놓고 있으니 그것 또한 훌륭하지 아니하다 할 수 없다. 그런 순수함과 밝은 의도가 느껴져서 감화될 수 있었고 기분좋을 수 있었다. 딱히 빠지거나 열광적으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흥청망청 같이 자유롭게 노니는 느낌이 좋았다.

시종일관 거의 무심할 정도로 흐르는, 두둥실 뜨는 듯한 Pillows의 음악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딱 들어맞는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시종일관 강조했던 소위 '에테르'가, 그들의 음악에는 담겨있다.

[FLCL]... 참 신기한 애니메이션이다.


The Pillows | Last Dinosaur

수정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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