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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0/1999

진(眞) 겟타로보 - 세계 최후의 날

by 노바_j.5 2008.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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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것이 좋아

'열혈(熱血)' 하면 우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녀석들이, 그 본색을 더 드러내며 우리 곁에 돌아왔었습니다. 때는 말그대로 '세기말'의 암운이 드리웠던 1999년.

게타의 화두는 항상 '종(種)의 생존'입니다. '강제진화'의 힘을 갖는 에너지원 겟타선과 더불어, 적은 언제나 이종(異種)의 생명체이며, 인류는 그들에게 '지구는 우리것이다!'라고 호소하며 외칠 당위성도, 의미도 없습니다. 그런 잡다한 공론(空論)이나 갑론을박 따윈 필요없어질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혈'입니다. 뜨거운 피, 그 생존본능에 몸을 맡기고 그저 돌진하는 것 뿐. 그래서 오프닝 가사 중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싸운다"('지금이 그 때다') 라던가, "지표가 불타오른다면, 단지 그것만으로 아무것도 필요없어"('Heats') 같은 말들은 겟타의 이런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열혈의 끝' 뭐 이런 느낌의 말들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하고 봤는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기대만큼은 못하다는 느낌입니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혼란스러운 제작상황이, 초기 지휘봉을 잡았던 이마가와 야스히로의 영향력을 뛰어넘지 못했다고 봅니다. 초반에 느껴지는 귀기와 임팩트를 살리지 못했으니, 초반이 제일 강렬한 이상한 느낌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보면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은 감독으로 표기되어지지도 않고, 그 외에 3명의 감독들(사토 유타카, 게시 야스히로, 카와고에 쥰)이 번갈아서 손을 댔습니다(*). 기본적인 틀은 짜여져 있었을거라고 생각되고 그래서 어떻게든 잘 수습되었지만, 진겟타에는 단순한 느낌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스토리를 제대로 풀어나가고 해명하는 것에 문제가 있었고, 신/구 겟타팀의 확실한 무게분배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적으로 나오는 인베이더들의 죽거나 덮치는 기준이 영 불분명하다는 겁니다. 그냥 스토리상 죽어야되면 죽는거고 아니면 계속 남아있고 살아있는거라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겟타로보'란 소재 자체와 원안의 힘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진겟타는 각종 번잡함 속에서, '소리만 지른다고 열혈이 아니야!'라는 주장에 완벽히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단순한 화면상의 연출이나 변해버린 캐릭터들이 주는 임팩트는 시간이 흐른 지금은 예전만큼 강하게 다가오지 못합니다. 결국 순도와 재미 면에서는 2004년의 [신(新) 겟타로보]를 뛰어넘지 못한다고 봅니다.

'재미'라는 것은 다양하게 풀이할 수 있는데... 간만에 몰아본 진겟타에 비해 비교적 느슨하게 감상했던 신겟타가 꼭 더 재미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지만, 진겟타는 재미라기보다는 뭐랄까, 에너지랄까요. '재미'하니까 다시 언급해야하는데,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만큼 '재미'에 통달한 사람도 없을겁니다. 극초반을 보면 느낄 수 있지만 원작요소들을 꼬아놓더라도 극단적인 '재미' 그 일점의 목표만을 바라보지요. 레트로적인 감각을 버무려서 착착 달라붙는 이해와 몰입감을 가져오고... 단지 이번에는, 무리하게 예산을 끌어다쓰는 특유의 전법(?)이 통하지 않았습니다만, 좀 여러모로 안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단 원조 겟타팀의 모습만큼은 -열혈노래계의 형님 미즈키 이치로, 열혈성우계의 형님 카미야 아키라같이- '열혈계의 형님들'이란 타이틀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멋졌습니다. 진겟타의 존재와 더불어 그들의 멋진 모습에, 이 시리즈의 의의를 둡니다.


* 카와고에 쥰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화들은 아예 '감독'이 언급되지 않고 그 자리에 '연출'로 다른 두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연출가 - Director - 감독으로 이어지는 풀이나, 이름이 표기되는 타이밍을 보았을 때 감독으로 지칭함에 큰 무리가 없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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