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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09

바케모노가타리 (化物語) [2009]

by 노바_j.5 2010. 7. 2.
[바케모노가타리]는 2009~2010년의 대표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꼽을만한 굵직한 작품이다. 제목은 '괴물 (혹은 괴이) 이야기'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영어로는 절묘하게도 'Ghostory'라고...),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괴이'의 정체는 단순히 괴물이나 유령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빚어낸 원념(怨念)이 비슷한 기운을 가진 귀신(정령)들과 동조해 구현화한 것에 가깝다.

이들 괴이의 정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카미츄!] 등에서 엿볼 수 있는 일본의 전형적인 다신신앙과도 결부되어 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형식을 제공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고, 실제 작품의 내용은 당사자 개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에 그 중심이 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기존 애니메이션 팬층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작품들이나, [케이온!]같은 완전히 열린 대중지향성, [럭키☆스타]같은 매니아성 짙은 작품들과도 어딘가 다른 지점에 비켜서 있다. 외적 측면에서 [바케모노가타리]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위 말하는 '에로게/미연시'... 즉 성인게임의 차용 방식에 있다.

예컨데, '미연시의 게임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말이 오가는 것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런 토론은 보통 '결국엔 야한 장면을 보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라는 식으로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에 [바케모노가타리]의 차별점이 있다. 분위기 상으로는 어지간한 에로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야할 때도 있고, 작중에서도 대놓고 미연시를 연상시키게 하지만, 표현 측면에서는 수위를 넘나들면서도 '이건 에로만화야!'라고 단언할만한 결정적인 방점은 찍지 않는 것이다.

니시오 잇신과 제작진이 굉장히 똑똑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런저런 요소들을 혼합시키면서 개념과 인식의 경계를 흐트러뜨리고, 거기에 천연덕스럽게 '우린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거야' 라며 언제라도 표정을 바꾸어버릴 수 있는 능수능란함에 있다. [바케모노가타리]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작품이다. 그리고 이것은 전례가 없을법한 끊임없는 말장난과 과감한 연출, 활자의 활용 등으로 인해 그 완성을 이룬다. (특히 이런 독특한 표현법은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이 작품의 소설적인 재미와도 극적인 상승효과를 일구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곳은 결국 한 점으로 귀결된다. 바로 '신세대'다. 에로게는 몰라도 야한거 싫어하는 사람 없듯이(위험한 단언이군...--;), 단순한 '오타쿠'를 넘어서 'N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보편성이 [바케모노가타리]에는 담겨져 있다. 어떤 면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TV판 엔딩이 주는 메시지를 [바케모노가타리]는 작품 내내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셈이다.

제작진은 신세대를 완벽히 파악하고, 또 온전히 보듬고 있다. 얼핏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그림들을 연상시키는 거칠고 날선, 그러나 섬세하고 여린 엔딩시퀀스 속 등장인물들에게 한없이 정이 가는 이유도 그런 때문일 것이다. 유리조각같은 세대에게 앙큼한 재미를 선사함과 동시에, 제작진은 극중의 오시노 메메처럼 넌지시 메시지를 담아보낸다. "현실을 마주보라"고.

소통도 없이 철저하게 고립하고 있던 개개의 인물들은 그렇게 주인공 아라라기 코요미의 '선의'를 중심으로 서서히 관계를 맺어나간다 (주인공 역시 괴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친구를 만들지 않는 타입'이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마치 작중의 '괴이'처럼 시청자의 모습을 비추며 다가온다. '패러다임 쉬프트'…. [바케모노가타리]는 어쩌면, 은밀한 개성을 간직하면서도 세상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세대 나름의 세상살이법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들어줘, 나의 이런 마음을..."




p.s. 이런 이야기가 재미없는 분들을 위해 한마디 첨언하자면...
난 시노부의 발차기가 작렬할 때 무서운 것을 보고 말았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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