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6~2010/2009

라이드백 [2009]

by 노바_j.5 2010. 10. 6.
허연 원피스 한장만 걸치고 인간형 오토바이(?)에 탄 주인공. [라이드백]의 포스터는 어딘가 조금 부조화스러운 이미지이지만, 적당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에 막상 필이 꽂혔던 것은, 처음으로 이 주인공 '오가타 린'에게 인간형 오토바이 '라이드백'을 소개시켜주는 부분을 보면서부터였다. 

[공각기동대]를 차용한 듯한 오프닝도 그렇고 이래저래 어설픈 점이 느껴지는 [라이드백]이지만, 재미있게도 이 작품은 기존의 바이크를 다룬 작품보다 더 바이크 라이딩의 쾌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 준다. 자유로이 공기를 가를 때의 청량함, 바람과 진동을 피부로 접하며 느끼는, 마치 내 몸의 일부인 것 같은 기분. 그림으로 아무리 바이크를 봐도 알 리가 없는 그 기분을, [라이드백]에서는 바이크를 실제로 '내 몸이 확장된 형태'로 디자인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주인공이 처음 라이드백이란 기계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바이크를 처음 타보는 듯한 그 두근거림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오가타 린은 촉망받던 발레리나였지만 발목을 다쳐서 꿈을 포기한 대학교 신입생이다. 뛰어난 신체능력 뿐만 아니라 남성적이고 거친 바이크/메카닉의 이미지를 중화시킨다는 점에서도 주인공 역에 적합한 그녀이지만,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오가타 린이 발목을 부상당함으로 인해 갖는 '자유로움에 대한 원초적 욕구'다. 오가타 린은 무대 위를 마음대로 누비던 시절의, 소위 '자유의 맛'을 알고 있다. 그녀가 라이드백에 타고서 다시금 느끼는 무대 위에서의 황홀경은, 일반시민들이 압제적 사회에서 '자유'를 되찾았을 때의 바로 그 기쁨과 직결되는 것이다. (오가타 린은 이후 스릴 자체에 도취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본작에서는 그 희열을 다시 한번 정제하여 자신이 바라는 형태로 승화시키고 끝난다.)

[라이드백] 작품 속의 사회 분위기는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다. 군부 통제 하의 사회적 억압이 전면적으로 드러나기 보다는 교묘한 사실 은폐 / 조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이 시대적으로는 더 적절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세상은 평화로워보이는데 주인공들은 총을 잡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 비현실적 괴리감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작품 속에 보여지는 사회에는 '테러리스트'의 존재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그런 와중에 여전사로 성장하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발레리나로 회귀하는 주인공 오가타 린의 싸움은 결국 오카쿠라나 테러집단의 항쟁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 되어버린고 만다 (따지고 보면 테러집단 쪽도 사회정의보다는 개인적 앙갚음을 위한 싸움에 가깝지만;). 주어진 분량 안에서 마무리를 짓기 위한 고육책이었는지 아니면 원작을 따라가다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지은건지는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초반의 순정 학원물스러운 이미지에서부터 후반의 전쟁을 방불케하는 상황으로 치닫기 까지, 기본 줄거리는 그럭저럭 따라가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항상 남게 된다. 한발짝 더 물러나 보면, 꼴보기 싫은 정치세력을 주인공 손에 피 안묻히고 숙청하겠다고 뜬금없이 테러리스트들을 집어넣은 모양새가 되는데,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라면 바로 이 점일 것이다.

작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2MB OUT'


[라이드백]은 디자인이나 스토리 등에서 전체적으로 투박함이 느껴지는 애니메이션이지만, 그 소재나 줄기는 개성도 있고 튼튼하며, 작품의 퀄리티도 나무랄 데 없다. 결론적으로는 꽤나 괜찮은 작품이고, 대사와 연출에서 힘만 조금 더 뺐더라도 완성도는 한층 더 나아졌을 것이다. 위의 '2MBOUT' 문구나, DR MOVIE 등의 한국 제작진,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모습, 작품 내의 사회 분위기, 타블로와 윤하의 엔딩곡까지 이래저래 한국과의 연관성이 강해 보이는데, 한국에서 청소년 / 성인층을 대상으로 시리즈물을 만든다면 - 보완은 필요하겠지만 - 지금 단계에서 딱 노려볼만한 수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첨부파일: 수정 자막.

p.s.
그러나 한국의 지금 모습은 [라이드백]의 세계보다 한층 더 악화된 것 같은 느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