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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08

스카이 크롤러 (Sky Crawlers) [2008]

by 노바_j.5 2010. 12. 30.
"하아... 오시이 이 양반 또 딸딸이 쳤구만"

보고 나서 머리속에 떠오른 한마디를 그대로 옮기자면... 그랬다.

사상은 마음에 안드는데 능력은 뛰어난 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 만큼 괴로운 것도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오시이 마모루다. [공각기동대 2: 이노센스]는 보지 않고 넘겼지만, [스카이 크롤러]는 예전 작품들과는 또다른 느낌이이서 보았으나... 으음. 이번에도 복잡한 기분.

예컨데 [스카이 크롤러]는 정말 압도적인 작품이다. 표현력에 있어서는 하나의 신천지를 이룩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스토리텔링도 훌륭하다. 아마 따지고 보면 (그나마 주변 스탭들이 엄청나게 제제를 걸었다던) [패트레이버 극장판(1편)] 이후로 오시이 마모루가 이렇게 원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건 처음일 게다.(주1) 그러면서도 자신의 철학적 견지는 잃지 않고 있다.

이미 수차례 평론가 수준에서 리뷰가 이루어졌으니(주2) 구태여 작품 자체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진 않겠다. 요약하자면 [공각기동대]와 [인랑] 등의 오시이 마모루 월드가 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현실의 젊은이들과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다는 정도.

내가 오시이 마모루를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이유는 딱 집어 말하자면 이거다: 이 양반은 현실이 이상과 같지 못함을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폭력으로 간주한 다음, 그 폭력이 난무하는 순간을 - 우아함과 나른함이 함께하는 - 일종의 퇴폐적인 시각으로 천천히 음미하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동질감을 느껴서일까, 혹은 아픈 구석을 찌르기 때문일까. 나로서는 그 정서가 참 상종하기 힘들다. 아니 어쩌면 정서 자체보다도,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해 (그리고 가리기 위해) 굳이 온갖 신기술과 복잡한 이야기, 철학적 은유를 채워넣는 변태성에 신물이 난 걸 지도 모른다. (정서 자체로도 충분히 변태적이거늘.)

업(業). Karma.
사실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변태성'을 빼놓을 수는 없다. 굳이 몰아가자면 어떠한 미학도 일종의 페티쉬즘이라 할 수 있을테고.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감독이 개인의 찌질함을 해소하는 도구로서 작품을 만들면 안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라면서 자신의 어두운 부분이나 잘못된 점들을 지적당하고 자각하게 되면, 그것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고치기 보다는 단순히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택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몰래 키우고 쌓아온 마음 속의 어두움이 작품 속에 분출되는 것을, 나는 가끔씩 본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와, '배설하고 싶은 욕망'은 구분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의식'과 '욕망'의 분리가 가식이 되고 자기기만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되어야 할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자기 작품에 드러나는, 해소하지 못한 구질구질한 것들은 만든 이의 업(業), 즉 카르마라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원죄라고 할까. 일견 불가피해 보이지만, 잘 다룰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해볼 일이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가서,
능력이 있는 킬드레(주3)들은 필연적으로 '진실'을 꿰뚫어보게 되고, 또한 바로 그 깨달음의 순간부터 그들의 삶은 지옥이 된다. 더러는 허무주의적인 태도로 적당히 살아가며 쾌락을 좇기도 하고 (나오후미), 반면 올곧은 이들은 도저히 바꿀 수 없을것만 같은 절대적인 힘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스러져간다. 

두 가지는 언급하고 싶다.

우선 하나는 쿠사나기가 결국 전쟁이란 궁극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진 못했을지언정, 자신의 딸과 (그것이 생물학적인 진짜 딸이든, 복제인간이든, 자신의 후임이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고, 당장 비행기 조종사라는 소모품적인 숙명에서는 어느정도 벗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누군가 초인적인 킬드레가 나타나서 '티쳐'(주4)를 격파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고, 설령 해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쟁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확률 역시 희박하다. 그녀가 지금까지 일구어낸 것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결국 '어른'이 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계속 나아가고 변화시킬 희망이란, 적당히 약하고 비뚤어진 인간적인 면모와 뛰어난 능력을 겸비한 쿠사나기에게 있다.(주5)

또 한가지는 영화 내의 세상이 심하게 엉터리라는 점이다. 보통의 중2병적이고 밀덕스러운 세계관과, 그 근간을 이루는 대중의 비인간적이고 무관심한 모습. 킬드레들에게 만연하는 무기력함 (심지어 숙명에 대항하겠다면서 일개 파일럿인 티쳐에게만 연연하는, 끝까지 그 시스템 안에서만 생각하는 아둔함이라니!). 찾아볼 수 없는 상호교감과 연대의식. 그렇기에 당신이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외칠 수 있다. "오시이 마모루, 우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세계따윈 믿지 않아. 말도 안되는 유치한 세계관을 극한의 리얼리즘으로 치장해서 그럴싸하게 보이려는 것이 꼭 당신 자신의 모습 같군!"




주1:
엄밀히 말하자면 오시이 마모루 월드에 익숙해진 것일 수도. 다만 비주얼의 산뜻함이나 이야기/연출의 우아한 느낌은 분명 [스카이 크롤러]가 그전 작품들에 비해 '원만하다'는 느낌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주2: 관련글/평론 바로가기

주3:
킬드레 - 영원히 죽지 않고 늙지 않는, 그래서 전쟁에서 살해당함으로서만 죽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일종의 신인류. 물론 [스카이 크롤러]의 작중 설정이다. 영단어 'Children'에서 유래한 이름인 듯.

주4:
공중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어른 남성' 파일럿. 전황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 소속까지 바뀌는 듯. 참고로 칸나미 유이치의 마지막 대사에서 그를 "Father"로 지칭하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주5:
[스카이 크롤러]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단지 호칭 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그 이름의 대상과 닮아있다. [스카이 크롤러]에서의 쿠사나기 역시도 [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과 같은 역할 - 기존의 시스템에서 비켜 선, 새로운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인물 - 을 맡고 있다. 한 명의 예외라면 정비사(마마)의 이름이 바토우가 아니라는 것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