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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1011

치코와 리타 - 거스르지 못하는 흐름을 승화시키는 예술인의... 시원한 오프닝 시퀀스가 흘러나오더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느낌으로 펼쳐지는 하바나의 모습.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와 나른한 오후 햇살에 과거를 회상하는 구두닦이 할아버지... 흥겨운 야외무도장에서 신나게 질주하는 트럼펫과, 원석처럼 빛나는 어린 무명 여가수의, 고혹적인 발라드 - 이 무렵까지도 별다른 감흥이 없다면, 당신에게 [치코와 리타]는 별로 재미없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은 스타일 그 자체가 직관적인 소통의 도구로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작품이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과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미술, 음악을 맡은 베보 발데스 셋의 조화가 굉장히 두드러지며, 이들이 빚어내는 [치코와 리타] 특유의 정서나 미감은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고 매력적이었다. 예컨데 조빔과 질베르투, 스탠 겟츠가 .. 2012. 2. 22.
기동전사 건담 OO (더블오) 극장판 - Awakening of the Trailblazer TV판을 보다 극장판을 보면 역시 퀄리티나 호흡이 다르구나 싶다. 캐릭터들 중엔 펠트와 그라함의 변모(?)가 두드러졌는데, 펠트는 작품의 대인배스러운 테마 vs 대중성 사이에서 희생당한 느낌이고(어흑ㅡ.ㅜ), 더블오의 쾌남 그라함 에이커는 이 작품을 끝으로 이별을 고한다. 더블오 시리즈 내내 마리나가 보여준 행보는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와 많이 닮아있는데, 그동안 보여준 '신'에 대한 집착이나 철학이라던지, 몇몇 ELS의 작중 형태라던지... 어째 불교적인 사상도 꽤 반영된 것아닌가 싶다. 세츠나와 관련해서는 원래 좀더 기독교적인 방향에서 출발해 결국 신과 선구자의 중간 즈음인 존재가 되었지만. 상업적으로 별 도움이 안될 듯한 철학적인 자세를 관철한 점은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무려 건담.. 2012. 2. 9.
Working!! (1기) - 최전선에 수줍은 듯 발을 올리는. 『Working!!』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코미디 작품이다. 원작은 조금 다르다고 하지만, 애니메이션 1기만을 보았을 때에는 묘한 부분들이 적잖이 있다. '와그나리아'라는 공간 『Working!!』은, 예를 들자면 『식객』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가벼운 터치의 코미디 일변도라는 점에서 그렇고, 전문성이 거의 하나도 없이 온전히 다양한 캐릭터들 간의 군상극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그렇다. 아예 일하는 장면이나 손님들과의 얽힘이 거의 없을 정도다. (또 그렇다고 와그나리아 밖으로 별로 나가지도 않는다!) 배경지식과 전문성에 최소한도의 비중을 두는 보통 작품들과 다르게, 『Working!!』에서 '왜 패밀리 레스토랑인가?'라는 질문을 추적하면 다음과 같다: 15.. 2011. 4. 27.
듀라라라!! [2010] 끝맛이 아쉬웠던 [토라도라!]를 보고 나서, 곧바로 [듀라라라!!]로 뛰어들었다. 나리타 료고 원작의 또다른 작품 [바카노!]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기대가 컸는데, 스타일면에서는 굉장히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무대가 현대의 일본이라는 점, 그리고 세르티 스툴루손과 오리하라 이자야라는 확실한 중심축이 존재한다는 점 정도? 인물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정말로 모든 것을 예측하고 또 뜻대로 할 수 있는, 신에 비견되는 지략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가 실은 뒤에서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대륙 전체를 지난한 전쟁과 파국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라면? 그야말로 후한말 최고의 악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인물이 바로 오리하라 이자야다. 모든 정보를 손에 쥐고 이케부쿠로를 쥐었다 폈다 하며,.. 2010. 9. 20.
하늘의 소리 (ソ·ラ·ノ·ヲ·ト) [2010] 어느 날인가 '보노보 침팬지'라는 유인원 종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암컷 중심의 권력사회를 이루며, 투쟁이 아닌 완전 개방된 성행위로서 평화를 유지하는 종이라는 내용이었다. 물론 사회적으로 대게 성적 난교는 터부시되지만, [하늘의 소리]가 바라보는 궁극적인 것은, 희미하게나마 그런 것 아니었을까? '남성성이 지배하는 세계가 종언을 고한 뒤 (그 대안으로) 여성성이 갖는 희망' 같은. [하늘의 소리]는 여러모로 실험적인 태도가 돋보이는데, 특히 연출이나 미술, 소재 면에 있어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초반의 고퀄리티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는 감탄도 했지만,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의 기술적인 격차는 앞으로 갈수록 줄어들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자면 내가 이 작품을 주목하게 된 것.. 201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