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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3

취성의 가르간티아

by 노바_j.5 2014. 2. 4.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라 사회초년병이여!


익히 알려진 대로 디자인이나 세계관은 케빈 코스트너의 망작 이미지에 정점을 찍어준(...) 『워터 월드』와 많이 닮아있다.[각주:1] 에스닉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고, 좀 어울리지 않는 듯 해도 거대로봇물을 좋아하는지라 시청 고고씽!


각본가 우로부치 겐의 멘트 중 "이 애니메이션은 기획 단계부터 10대 후반~20대 초반의 연령층, 즉 앞으로 사회에 진출, 혹은 사회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메시지를 포함하는 것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라는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과연, 틀에 박힌 교육에 깔끔하게 세뇌되어 있던 레드는 모든 것이 통제된 둥우리를 벗어나, 교과서 속 세상과는 많이 다른 야생의 현실 속에 내던져져 좌충우돌 한다. 의외로 실제 인간 사회는 최전선에 서 있을 수록 야생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고,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한 '인간관계' 속에 굴러간다. 세뇌교육과는 다른, 양심에 호소하는 자신만의 정의와 규칙들을 새로 정의해가는 모습에서 사회 초년병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떠오른다.


'인간'을 어떻게 규제하고 인간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역시 의미가 있는데 (특히 '문화'와의 상관관계에 대한 기술은 인상적이었다), 냉혹해져가는 세상에 맞추어 '인간이 아닌 무언가'로 진화해버린 사람들(아마도 현실 속에선 '비인간적인 성공주의자'가 가장 가까우리라)마저 '같은 인간이었음'을 알고, 같은 '인류'로 끌어안고자 하는 레드의 자세가 제작진이 던지는 가장 큰 화두가 아닐까. 재미있는 것은 주체성을 버리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포기해버린, 기계와 시스템의 신도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가차없이 까인다는 점이다. 환경 적응을 위해 인간성을 버린 사람들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지 고민의 대상이 되는데, 이쪽은 그냥 몹쓸인간 내지는 버러지들 취급이다. 크크크크.


인상적인 캐릭터는 가장 인간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피니온이었는데, 윗 문단에 언급한대로 이 작품에서 갈등을 이루는 큰 축은 '나아가 개척할 것이냐' vs '지키고 따를 것이냐'에 있다. 그런 면에서 가르간티아 선단의 사람들은 사실적인 수준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각기 정도의 태도를 보여주는데, 피니온은 유난히 프런티어 정신의 상징같은 인물로 두드러진다 (생긴것도 딱 양키같고). 사회와 타협하지 않고 독자적인 아웃사이더로 뛰쳐나가버린 해적여왕 라케지와 이어진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흥미롭기도 하다. (라케지는 엄밀히 말하자면 범죄자라기 보다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주류 사회의 상식적 규범에서는 비켜나 있는 비주류층이나 소위 말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라 보는 쪽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을지언정, 로봇들이 갑자기 극후반에 인간 노릇을 하는 모습은 너무 간지를 위해서 일관성을 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선 쿨이 더 길었으면 좋았을거란 얘기도 있고, 2기가 확정되었다고 하긴 하는데, 방대한 세계관이나 캐릭터 층에 비해서는 이야기가 확장할 폭이 그다지 넓어 보이진 않는다. 여기에서 확장하려면 『턴에이 건담』 정도의 스토리로 간다거나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거대 로봇이 -가끔은 큰 일을 하게 해주는 원동력인- 중2병의 구현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예 거대로봇 없이 이루어지는 컬쳐 SF 판타지 휴먼드라마(뭐냐 이게) 속 레드의 성장드라마도 재미있을 것 같으다. 자극적인 각본가의 성향으론 아마 무리겠지?



  1. - 솔직히 아쉬운 작품이라는 평이 대부분이다. 다만 들어간 돈이랑 흥행 실패로 적자난게 장난이 아닌지라(...).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