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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3

킬 라 킬 (キルラキル / KILL la KILL)

by 노바_j.5 2016. 2. 28.

알몸선언


「천원돌파 그렌라간」의 스텝들이 다시 의기투합했다고 하여 그리고 방어도가 높은 전투복으로 인해 화제가 된 『킬 라 킬』입니다. 저는 잘때 항상 알몸인 관계로 굉장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는 헛소리.


전체주의라던지, 개성 혹은 카오스의 포용성, 나아가 순응 vs 저항 등 메세지성도 굉장히 강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와닿았던 것은 특유의 격렬함입니다. 제작진이나 등장인물들이나 하나같이 약을 한 대야씩 들이킨 것 같은 이 애니메이션은, 그러나 그 주제의식과의 훌륭한 통합을 보여주면서 과격한 부분들도 충분한 설득력을 보여줍니다. 여러모로 전작인 그렌라간보다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그렌라간이 이미 (상대적으로는) 더 큰 파격을 보여준 바 있고 무엇보다 소재나 표현 면에서 대중성이 밀리는 관계로 전작만큼의 인기는 얻지 못한 듯 합니다. 재미는 두 작품 다 짱짱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그렌라간이 더 황당무계했고 킬라킬의 경우는 보다 더 정제되고 세련되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살짝 아쉽기도 하네요.


패러디가 넘치는 작품이기는 합니다만 관련 리뷰 등을 보면 시청자 층이 '끊임없는 재미 정도에 불과한' 패러디에 필요 이상으로 주목하면서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큰 틀에서 보았을 때에는 이 작품이 가장 정신적으로 계승(?)하는 작품은 겟타로보 시리즈 아닌가 싶구요. 정신나간 정신! 주연들 역시 아무리 봐도 겟타 3인방이 제일 잘 오버랩된단 말이지요.


제가 본 작품들 중 가장 '전율'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작품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특유의 막나가는 스타일에 힘입어 '역경→극복'을 순식간에 몇단계씩 해치워버리는데도 억지스럽거나 퇴색되지 않는 점이 정말 대단했습니다. 평상시에도 남들 1~2화 분량의 스토리적 / 감정적 업다운을 에피소드 반절만에 처리해버리는 절륜(?)함을 보여주더니만(...) 이런 점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정말 잘 했다고 밖에는 할 수 없네요. (최후반부 류코와 센케츠의 '옷도 아닌 인간도 아닌, 그러나 옷은 옷, 인간은 인간' 이라는 부분과도 통하는 데가 있지요.) 그리고 꼭 언급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데, 성우들의 열연이... 특히 소리지를 때 고음이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서 좋습니다. 분명히 염두에 두고 뽑은건데... (쟈쿠즈레 노논은 원래 그런 캐릭터라 치지요.) 개인적으로 그렌라간에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고음이 안되는 시몬이었거든요. 역시 열혈은 이래야죠.


상기한 작품의 요란한 정체성을 보았을 때, 사실 저에게 있어서 이 작품의 평가를 가장 깎아먹는 한 장면은 마지막에 사츠키와 류코가 주고받는 '오카에리'와 '타다이마'입니다. 일본문화에서도 진부의 극치를 달리는 클리셰인데 이걸 마무리에 방점으로 찍다니, 아휴... 맥이 탁 풀려버리더군요. 스토리메이킹에 있어서의 '원점으로위 회귀'가 아닌, 작품의 '정체성 파괴'에 들어가는 경우라고 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엄청나게 쪼이는 스케쥴에 만들었으니 판단 미스가 나버린 것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센케츠를 졸업하는 부분은 훌륭하게 처리되었습니다만.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는 역시 하리메 누이. 그전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고있던 킬라킬이었지만 11화 등장과 함께 애니메이션의 판도와 시청자의 몰입도를 한 순간에 뒤집어 엎어버리는 파괴력! 메타픽션적인 면모와 더불어 작중의 가장 독특한 캐릭터 설정까지!


이런 식으로 극단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작품들은 보통 서양에서 인기가 많고 실제로도 해외에서의 반응은 상당히 뜨거웠다고 느껴집니다. 제작사인 트리거의 킬라킬 이후의 행보를 보니 킥스타터 모금으로도 작품을 만들고 작풍에도 배리에이션을 넓히는 등, 향후를 기대해봄직 합니다. 실력들이야 이미 충분히 검증되었으니 더욱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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