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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4

바라카몬 (ばらかもん)

by 노바_j.5 2015. 5. 12.

"어른이 성장하는 만화"라는 문구를 보고 목록에 집어넣었던 차에, 지인의 언급으로 이번에 보게 되었다.


직업상 어린 아이들을 자주 보며 느끼는 것은, 철이 들고 말고는 나이와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사람의 성품은 기본적으로 어릴적부터 타고난 기질과, 켜켜이 입혀져온 환경의 영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축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의 기억이라 했던가. 한정된 울타리 밖에서의 경험이 미숙한 요즈음의 법적 성인들에게 정신적, 인격적으로 성숙할 여지는 얼마든지 남아있다. 남은 것은 취사선택 뿐.


『바라카몬』의 주인공 한다 세이슈는 -다행히도 자신의 부족함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올곧은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극도의 엘리트주의적 환경에서 길러진 인물이다. 그의 기술적인 능력은 이미 프로의 세계에서도 상위급에 속해 있다. 하지만 그가 이대로 한명의 완성된 예술인이 될 수 있을까? 숱한 역사상의 인물들을 생각해보아도, '사람'이 되지 않은 능력자는 비극의 주인공이 될 지언정, 스스로 온전한 성공을 이루고 또 유지한다는 것은 말그대로 천운이 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계기는 주인공의 충동적 폭행에 대한 처벌이었고 결말은 '성장'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되지만, 그의 아버지가 그를 외딴 섬으로 보낸 것은 그의 기술적 능력에 걸맞는 '사람다움'을 다방면으로 채워주는 기회가 아니었을지.


도시와 외딴 시골 섬이라는 대비에서 오는 여러가지 차이는 사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아니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아서, 주변을 둘러보면 지방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못 겪어본 대도시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고, 서울 토박이들은 또 그 사람들대로, 접해보지 못한 지방에서의 삶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마치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시골 중의 시골인 섬마을과 엘리트주의적으로 자란 한다와의 선명한 대비는 -적어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호평으로 보았을 때에- 두루두루 공감을 살 수 있었던 듯 하다. 


작가의 실제 삶이 묻어나서 그런 것일까? 무난함 속에 캐릭터들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이며,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뭐든지 즐겁고, 자신 바깥의 것들과 피부로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들이 정겹다. '전문가'로서의 나와 '일상인'으로서의 나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을 수 없다. 이야기의 표면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사실상 한다가 익혀가는 것은 그 둘을 좀 더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공존시키는 법이리라.



p.s.

목소리들이 참 좋았다. 나루를 위시한 어린아이들의 순진무구한 목소리도 그렇고, 작중 최고 미인인 한다의 어머님이 참 인상적이어서 찾아보았더니, '나디아'와 '아니스 팜'의 성우 타카모리 요시노... 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