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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4

시로바코 (SHIROBAKO)

by 노바_j.5 2015. 9. 29.

작품의 결말을 향해 가면서 몰아치고 또 몰아치는 기세를 보고 감탄했다. 작품 전반(全般)에 풀어놓거나 쌓아온 갈등들을 연달아서 한꺼번에 부딪혀버리는데, 여기까지 오려고 그동안 천천히 묵혀온 걸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뚝심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잠깐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했을 때에는 3D 극장판을 제작하는 파트에 있었는데, 2D와 3D, 일본과 한국 등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아무래도 1기 분량은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체적인 그림과 이해를 돕기 위해 밑그림을 깔아놓는 느낌이고, 본격적인 시작은 2쿨에서부터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크게 보아 주인공은 미야모리 아오이와, 그녀의 애니메이션 동아리 동기인 20대 초반 여성들인데, 1기에서는 (몇몇은 2기 중반까지도) 허둥지둥 일을 배워나가는 입장이었으니...


작품적으로 가장 임팩트 있는 캐릭터는 2기에 등장하는 히라오카 다이스케. 또다른 주인공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특히 등장 분량에 비추어볼 때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자랑하는데, 이것은 그가 가장 현실과 맞닿아 있는 캐릭터라서 그렇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비록 갈등 해소의 과정이 명확하게 보여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쪽이 현실적인 표현이었을 지도.


업계의 용어나 각 파트의 사람들 등,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인물들의 개성이 하나하나 잘 살아난다는 점 역시 대단하다. (이런 면에서도 1기 분량에서는 시청자 역시 정신이 없다가, 뒤로 갈수록 다양한 인물들의 실재적인 느낌이 완성되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그림체도 약간 평이한 스타일이고 작품의 느낌도 그렇게 감상적인 느낌은 아니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후반부로 몰아쳐가면서 사카키 시즈카의 더빙 씬에서 눈물이 글썽하고, 마지막 마무리에서는 정말 가슴 뭉클한 느낌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이렇게 벅찬 느낌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는데, 여러모로 뒤통수 때리는 작품이다.


후반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중 애니메이션이었던 "제3 비행소녀대" 와 주인공 여성들의 모습을 겹쳐지게 해 놓은 것이었다. 아리아와 시즈카의 비밀스러운 출격이라던가. "안데스 처키"가 어떤 근원적인 원동력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쓰였다면, '현재' 제작중인 "제3 비행소녀대"는 나아가는 지금을 보여준다. 시로바코에서는 현실과의 구분이 흐릿해질 만큼 작중작이나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뚜렷한데, 돌이켜보면 이 작품이 가져오고자 했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일체화' 아닐까 싶다. 너와 나는 하나. 우리는 하나. 현실과 허구 속의 인물들도 하나. 시청자와 시로바코의 세상 역시 하나. 그리하여 작품의 마지막, 우리는 마치 그동안의 고난한 여정을 동거동락해온 사람들처럼 해소된 느낌과 벅찬 뭉클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본질적인 힘을 강력하게 느낄 수 있는, 멋진 순간이다.



p.s. 하지만 주인공들이 목숨걸고 있는 "신불혼효 칠복진"은 정말이지 어디를 어떻게 봐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