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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2

에반게리온: Q - 3.33 You Can (Not) Redo

by 노바_j.5 2016. 7. 22.

 

몹쓸 물건이지만 어쩔 수 없이 흥미진진하다.

 

'서'에서 '파'로 넘어오면서 작품에 변화를 준 것이 두드러졌는데, '파'에서의 그것이 스토리를 대폭 뜯어고친 정도였다면, 'Q'의 경우는 아예 다른 작품처럼 느껴졌다. (의외로 플롯의 큰 틀만 따져보면 꽤 많은 부분이 유지되지만.)

 

본편 전의 거신병 이야기는 에반게리온의 이야기와 연관성이 강하다. 일반인이 에바나 사도의 전투, 서드 임팩트 등이 닥쳐올 때 어떤 느낌일지가 상당히 현실성 있게 나오고, 신화와의 연관성이나, 화자가 이야기하는 7일간의 창조와 소멸, '그딴 거 알까보냐 난 혼자라도 살아남을거다'라는 개인주의적 시각, 본편으로 이어지는 것 처럼 의도된 마무리 대사 등... 역시 지나가는 떡밥 중의 하나라고 쳐도, 지브리 + 카라에서 이런 걸 내놓았다는 것이 꽤 재미있다. 과거의 기법을 현대의 기술로 표현하였을 때엔 이렇구나 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본편 이야기로 들어가서, 관객 입장이 신지와 동일시된다는 평은 대체적으로 맞지만, 아무리 봐도 본 작품이 신지를 다루는 것에는 무리수가 있다. 초반의 미사토를 비롯한 뷜레 측 인물들의 태도도 그렇지만, 작품 내내 설명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섰고, 이후 아무리 심적으로 몰렸고 나머지 인물들에 비해 미성숙한 (혹은 예전 그대로인) 신지라고는 해도 별반 근거도 없는데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믿고 있는 상대이자 '창을 뽑아야 된다'는 이야기를 해준 당사자인 카오루마저 만류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창에 집착하는 모습은, 설령 관객이 신지와는 별개로 정보가 주어졌다 하더라도 이미 도가 넘어섰다. 즉, 스토리나 분위기를 원하는대로 끌고 가기 위한 안노의 억지에 가깝다.

 

초반에는 파격적인 진행에 몸서리가 쳐지면서도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생각이었으나, 뒤로 갈수록 느껴지는 공허함에 안노의 병이 도졌구나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 말도 그렇고... 이 작품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오시이 마모루가 남긴 촌평과 큰 차이가 없는데(보러가기), 안노 히데아키는 굉장히 솔직히 자기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슈퍼 테크니션에 머무른다는 인상이다. 뭔가 내적 동기나 모티브가 있다기 보다는 그때그때 꼴리는대로 해보고싶은걸 막 해버리고, 기술적 완벽함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예컨데 '왕립우주군~오네아미스의 날개'같은 경우는 본인이 진짜 작품성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창창하게 감독 커리어를 내딛는 시점에서 무의식적으로 작가주의적 감독의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입혀본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이 작품을 돌이켜보면서 안노 히데아키의 페르소나가 누구일까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이카리 겐도와 신지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다. 독재와 음모, 완벽주의적 엄격함, 그리고 두부멘탈(...). 결론은 그냥 정서적, 심적으로 그리 좋지 못한 때에 (혹은 Q 제작 진행이 그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만든것이 안타깝다는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상대(관객)도 없는데 혼자서 폭딸하다가 복상사할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도 훨씬 지체되고 있는 마지막 한 편은 부디 안노가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제작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이 주는 무게가 장난이 아니라 진행하면서 또 어떻게 될 지는 모를 일이지만... (참고로 파 / 2.22의 차후예고에서는 향후의 진행방향이 어느정도 틀이 잡혀있었다는 것이 다양한 장면들로 보여지는데, Q 뒤의 예고편에서는 보여지는게 굉장히 한정되어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향후 전개 방향은 굉장히 크게 열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편,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숙녀' 관객층을 위해 서비스해주는 작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카오루♡신지 커플 스토리의 비중은 컸다. 이런 식으로 오타쿠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킥킥거리게 만드는 부분들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그거야 그거대로 안노/카라의 테이스트일 테고... 연출력이나 기술은 확실히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발군이다. 홈시어터 시스템에서 시청각적 쾌감을 이 정도로 뽑아낼 애니메이션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양한 떡밥들도 그렇지만, 확실히 본인이 오타쿠인 만큼 각종 코드들은 정확하게 짚는다. 표현의 수단도 다양해서 (엔딩이나 예고편, 만화판, 설정집 등 각종 루트로의 의미 부여나 연관성 등) 계속 파고들게 만드는 소위 '야리코미'적 매력도 넘쳐나고... 작품으로서는 부정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계속 흥미로운 이유다.

 

개인적으로 이번 엔딩곡인 '사쿠라 나가시'는 상당한 명곡으로 생각하는데, 마침내 다시 모인 칠드런 셋이서 말없이 붉은 사막을 걸어가는 엔딩의 여운이 참 진하다. 본작(Q) 내내 이어졌지만 한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던 모든 씁쓸함이 한 순간에 어루만져지듯 담겨져 있고... 가사로 이어지는, 일찍 져버리는 꽃잎들, 아직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모든것의 끝에 사랑이 있다면... 이라는 일말의 희망 등이 그 느낌을 배가시킨다. 여담이지만 우타다 히카루의 곡들은 같은 멜로디를 되풀이하면서 시적인 가사와 표현의 차이 등으로 호소력을 높이는 스타일인데,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되풀이되면서 변주되는 에반게리온과 참 잘 맞는다 싶다.

 

 

p.s. 대다수의 떡밥들은 나무위키에서 잘 설명이 되어있는데, 팬들의 분노가 느껴지는 분탕질(?)에 가까운 느낌이라 엄청 재미있게 읽히더라.

 

p.s.2 '사쿠라 나가시'는 '바그다드 카페'의 명곡 '콜링 유'와 연관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