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2020/2018

바이올렛 에버가든 (Violet Evergarden)

by 노바_j.5 2018. 7. 13.

뭔가 다르다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부터 이야기하자면,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주목할만 하다는 점.

첫 화를 보고 나서 '아니 도대체 돈을 얼마나 때려박았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화는 익히 기대하고 있었지만, 사운드의 질감까지도 역대급이라고 할 만하다.

넷플릭스의 일본 애니메이션계 진출은 예전부터 이루어져왔으나 이번만큼 본격적이라고 느껴진 것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변방에 머무른다는 느낌이었으나 쿄애니라는 제작사와 본 작품의 성격으로 보아 정말 메이저 무대로 올라온 느낌. 2018년 30편의 작품 발표를 목표로 무려 9조원(!)의 투자를 한다고 하였는데, 애니메이션 제작 최대의 관건이자 난점이 투자자 확보라는 점에 있어서는 쌍수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모에물과 일상물은 -북미 시청자들의 취향에 따라- 배제된다고 하니 해당 장르의 팬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약간 우려스럽다. 미디어계의 공룡인 넷플릭스의 파급력이 어떻게, 어디까지 갈지 흥미롭다.

'괜찮다'

작품으로서의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뭐랄까, 크게 문제가 있지도, 그렇다고 크게 파격적이지도 않다. 쿨+메가데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취향저격이라서 즐겁게 보았지만, 살인기계로 키워진 전쟁고아가 사회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인간성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는 사실 상당히 진부하고 오글거리는 감이 없지않아 있다. 여기에 더해 맹목적이고 무지했던 외골수 주인공이 '은인', 혹은 '마음의 주인'을 찾아 평생을 떠돌아 헤매인다는 점은[각주:1] -감동적이지만- 참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은 스스로의 '역할'에 (마치 도구처럼) 종속적이고 충실한 일본인들 자신의 이야기 아닐까 싶고. 원작이 교토 애니메이션 역대 최초의 대상작이라며 스토리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였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넷플릭스는 비지니스적인 측면에서는 굉장히 과감하지만, 작품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묘하게 안정적이고 어딘가 익숙한 느낌의 것들을 많이 만든다. 시청자들의 데이터를 엄청나게 모은다고 하던데 (예를 들면 어느 장면에서 사람들이 화면을 멈추는가, 라는 등의 세부적인 것들까지), 이런 자료들을 통계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소위 말하자면 안전하게 노는 듯한 (play it safe) 느낌? (동시에 넷플릭스 작품들 중에서 진정한 '명작'을 만나기 힘들 이유 아닐까.) '바이올렛 에버가든'에서 유난히 예쁜 클로즈업 장면이 많이 나오는것 역시도 어느정도 지시된 사항이 아니었을까 싶다.

스토리텔링적인 문제로 보았을 때에는, 주인공인 바이올렛이 편지에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더 잘 담아내게 되는지의 과정이 생략된 것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이 부분은 사실 앞뒤가 안맞는다: 감정을 깨닫지 않으면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쓸 수가 없는데, 감정을 깨달아가는 부분은 스토리의 중심에 있고, 그 과정은 다양한 사람과 사연들을 겪어나가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대필가로서의 능력이 어느 이상 되지 않으면 이런 여정 자체가 불가능하니...

다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문제는...

때깔이 기가 막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이 있지만, 작품 전반의 퀄리티도 그렇고, 바이올렛도 너무 예쁘고, 사운드도 어마어마하고... 사람의 무의식적 취향(?)에 호소하는 부분이 그야말로 굉장하다.

사실 제작진 입장에서는 작품의 포인트를 어디에 둘지 선택해야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논리적인 설명이나 맛깔스런 연출이 어려웠을 - 작품에서 다루려고 했을 때에 '가성비'가 절망적으로 떨어지는 - 대필가로서 성장하는 부분의 개연성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면, 『바이올렛 에버가든』은 옴니버스식 힐링 물으로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가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화는, 그래서, 목가적인 풍경 속에 펼쳐지는 10화이다. '캬아... 이거를 10화에서 완전 조져버리네'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손가락에 꼽는 작품인 「하이바네 연맹」이 많이 생각났다.

'때깔'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작화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만큼의 퀄리티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원거리에서 롱샷으로 잡는 배경들은 아주 특별하지만, 사람들의 호평은 아무래도 캡쳐하기에 어울릴 법한 '예쁜'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그런 것 아닐까. 의외로 작화 퀄리티는 어중간한 부분들도 곧잘 나오며, 노린듯한 화면연출이 너무 남발되는 관계로 (정면 클로즈업이라던가...) 되려 평면적이고 식상하다는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울려라! 유포니엄 2」가 뚜렷이 앞서있다고 본다. (이건 비주얼적인 측면 외에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운드트랙이었는데, 사운드의 질감(믹싱/마스터링)도 그렇거니와 작곡 스타일이 지금껏 들어왔던 것들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악 담당이 Evan Call이라길래 '설마 외국인인가...?' 했더니, 정말이었다(...). 버클리 음대에서 영화음악을 전공하고 일본 애니업계로 뛰어든 것 같은데, 이 무슨 꿈에 그린 듯한 삶인가... 부럽다 ㅜ.ㅠ 기존의 일본애니 작곡가들하고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작곡가이니 향후 활동을 주목해볼만 하다.


길베르트의 처우(?)를 두고 원작과 애니판에서 취급이 상당히 달랐는데, 엔딩에서 다시 여지를 열어두는 것을 보고는 '아니 이놈들이?' 하면서 킥킥거렸다. 아마 원작 결말과의 시차 문제나 2기 제작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기존 애니판의 방향성에 약간 문제는 생겨도... 하긴 이제와서 그런것 쯤! 역시 바이올렛이 행복하도록, 진 해피엔딩(?)으로 좋게 가주는 게 좋지 않겠나 싶다. 사실 애니판은 애니판대로 바이올렛이 길베르트를 졸업하고 끝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바이올렛 에버가든』이 뭔가 작가주의적인 작품성을 추구하는건 이미 맞지 않는 상황같아서(...), 순순히 대중작품으로서 시청자를 기분좋게 해주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알드노아 제로가 떠오른다...

2기를 기대해보자! ^^


  1. 사무라이 / 낭인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카우보이 비밥'이나 '사무라이 참프루' 등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비록 스파이크 스피겔은 이런 부분을 고스란히 적용시키기는 힘들지만)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