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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6

쿠로무쿠로 (クロムクロ)

by 노바_j.5 2019. 2. 12.

볼만한 로봇물 없나 하고 예전부터 찾아둔 작품인데 이제서야 완주했다.

크게 땡기지 않은것은 아마도 주인공과 주연메카의 매력이 미묘하기 때문이었던 듯 싶지만, 막상 보기 시작하니 무리없이 녹아들었고, 끝까지 다 보면 깔끔한 마무리에 정감이 간다.

오우마 켄노스케 토키사다의 경우 오랜만에 보는 순수파 열혈주인공인 점이 반가웠다. 겟타로보 시리즈의 료마와 비슷하지만 좀더 고풍스럽게 정제된 캐릭터인데, 상기했듯 디자인은 조금 아쉽다. 고증에 상당히 신경을 쓴 것으로 보아 시대고증 역시 어느정도 영향은 있었을 법 하다.

메카들의 디자인이 난해한데 액션씬 역시도 크게 친절하지는 않아서, 정신없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렵고 임팩트 면에서도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메카디자인과 액션연출에는 아쉬운 부분이 꽤 있다.

작품으로서 무리하지 않고 안전한 선 내에서 인간군상극으로 끌어간 것은 좋았다. 욕심내지 않고 딱 필요한 인원 정도로 적당히 이야기를 풀어내었는데, 특히 좋았던 것은 다수의 주역급 캐릭터들을 통해 되풀이되는 '있을 곳이 없는' 것에 대한 공허감과, 현실적이면서도 개념찬 여주 유키나의 캐릭터성이었다. 

다만, 캐릭터들의 개성이나 비중, 다양성 등에서는 조금 더 욕심을 내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각 캐릭터의 한계나 핵심까지 끌고가는 일은 거의 없고, 스토리에 강력하게 얽혀들어가는 경우도 보기 힘들다. 출연 캐릭터들에게 두루 시선을 주지만 '굳이 왜 (이런 캐릭터를 잡았을까)?' 싶은 경우가 많다. 마리나 선생님이나 톰 보든 등이 대표적이겠지만, 이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캐릭터가 마찬가지여서, '그냥 이런 사람이 있구나' 하고 마는 수준이다. 『쿠로무쿠로』는 언제나 전체적인 상황을 조망하고, 흐트러지게 하지 않는 데에 일관적으로 초점을 유지한다.

생각해보면 거대로봇물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누었을 때에, 열혈계 작품이라면 소위 '나'를 버리는 지점까지 육체적, 정신적으로 등장인물을 몰고 가서 그것을 폭발시키는 카타르시스가 있고, 리얼계 작품에서는 그만큼의 현대사회에 대한 반영과 비판이 날카롭게 드러나는 매력이 있는데,[각주:1] 『쿠로무쿠로』는 그런 점에서 보자면 로봇물로서 보기보다는 일상적인 인간군상극에 가깝다. 소재는 누가 봐도 로봇물이지만, 스토리나 분위기, 연출 등을 따지고 들어가면 '거대로봇이 등장하는 「케이온!」이나 「시로바코」' 같은 느낌이다.

그 외의 특기할만한 점이라면 사무라이 등의 오리엔탈적인 요소를 버무린 점인데, 역시 '무리없다' 수준으로 평할 수 있을 것 같다.

총평하자면 안전지향적인 제작 덕분에 전체적으로 좋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무난한 정도에서 마무리한 점은 아쉽다 정도. 더욱 더 뻗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80% 선에 테두리를 잡아놓고 매끄럽게 잘 마친 듯한 느낌이다. '수수한 군상극 쪽에 강한 P.A. Works가 처음으로 내놓은 거대로봇물'이라는 것이 굉장히 와닿는 결과물인데, 다음에는 조금 더 강렬하고 폭발력이 있는 작품을 기대해본다.

  1.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에서 이야기한 '열혈계'의 특징은 '로봇물'이 기본적으로 깔고 들어가는 부분이고, 거기에 '리얼계'적인 특성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는 작품마다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