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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6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1기)

by 노바_j.5 2017. 12. 26.

거창한 몸짓 없이 목소리 연기로 스토리의 전달을 살리는 '라쿠고'라는 장르의 특성을 살펴보니, 과연 성우들이 달려들만 하겠다 싶다. '쇼와 겐로쿠 심중'에는 장인들의 예술혼이 불타오른다. 이런 전통적이고 격식있는 주제에는 흔히 보이는 반응이긴 하지만, 시청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무대 배경 역시도 라쿠고, 나아가 전통문화가 흥망의 전환점을 맞이하던 세계 2차대전 전후로 이뤄지다 보니 역시 구수한 재즈가 사운드트랙의 주를 차지한다. 주제가도 시이나 링고 특유의 묘한 감성과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보컬이 합쳐져 굉장히 매력적이고.

어느 정도 이 작품에 대한 이미지를 잡고 싶다면... 보면서 이것저것 생각나는 작품들을 적어보았는데, '언덕길의 아폴론'이나 '붉은 돼지'가 조금 떠오르기도 하였고, 영화로는 '황색 눈물'이나 '라라 랜드', 뮤지컬 '사의 찬미' 등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웰메이드 작품이고, 흔히 볼 수 없는 퇴폐적인 미학이 담겨 있으니 추천할만 하다.

작품이 주는 통일감이 참 좋은데, 라쿠고라는 장르가 처한 현실은 이 작품의 배경음악으로 주를 이루는 '재즈'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가능하다. '현실'을 비추어주면서 현대를 관통하는 개인주의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며, 작중작으로 등장하는 라쿠고는 일관되게 본편의 스토리 자체를 함축하거나 암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소재도 독특하기는 하지만 역시 가장 독특한 점은 '미요키치'라는 캐릭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시대의 일본에 적합한 팜므파탈의 이미지랄까. 퇴폐적이고 현실적이지만, 그 시대적인 영향 때문인지 묘하게 고급진 느낌도 함께 갖추고 있으며, 안 보이는 곳에서 이야기를 지배하는, 결국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요키치를 보여주는 작품의 전개가 전반적으로 매끄럽지는 않지만, 성우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연출 면으로는 영화적인 느낌도 인상적이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점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이다. 인물들이 복잡하고 미묘한 심경을 보여주다 보니, 예를 들면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리거나 종이 위에 눈물이 툭, 툭 두어방울 떨어지는 장면을 확대함으로서 인물들의 내면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정서는 신경질적일 정도로 곤두서있는, 혹은 톡 하면 바스라질 것만 같은 묘한 텐션이 지배하고 있다. '예술'이라는 것은 이런 것 아닐까.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자면 이런 전반적인 작품의 분위기와 유달리 다른, 공연 예술을 한다는 것의 희열을 승리의 찬가처럼 보여주는 5화와, 본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9화를 꼽고 싶다.

다른 작품들과는 반대로 1화가 가장 불만족스러운데, 아마 이 작품에 접근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분들은 라쿠고라는 장르가 생소해서보다도 1편의 답없는 스토리텔링 덕분에 그리 느껴질 것이다. 조금만 참고 넘어가면,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