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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5/2004

카쿠렌보 (Kakurenbo)

by 노바_j.5 2008.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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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일본문화를 접하면서 가장 기묘하다고 느끼는 것이 뭐냐면, 그 특유의 신호등 음악입니다. 신호등 음악이라면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접하면서 사는 일상적인 멜로디일텐데 그것이 정말 이상하리만치 불길하고 음습한, 또 억하심정같은 억눌린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밑에 동요메들리 중 첫번째 곡)

그렇게, 일본의 전통문화라는 것에는 항상 이해하지 못할 섬뜩함과 음습함이 서려있습니다. 그것을 연결시켜서 현대/근미래적인 느낌으로 이어 연결시킨 것이 이 [카쿠렌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으스스한 세기말적 분위기가 배경인 '무서운 이야기'같은 느낌이랄까요. "공포영화"라는 느낌보다는 밤에 듣는 "무서운 이야기"라는 느낌이 더 어울립니다. 이것은 단지 외형만이 아니라 작품의 내러티브적인 면에서도 전통문화적인 느낌이 많이 나고 또 이야기가 여전히 미궁에 남은 것 같은 느낌으로 끝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아이들의 놀이로 시작해서 아이들의 놀이로 끝난다는 점도 있구요.


일본 동요 메들리(4곡). 동요입니다 동요(...)
출처와 가사는 이곳에.

작중에 나오는 각종 단어들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싶어서 돌아다니는데, imdb에 가 보니 역시 사람들이 일본문화나 단어의 뜻, 일본 애니메이션 미학에 대한 무지(?)로 인해서 이해에 어려움을 겪고 있더군요 (설마 애니메이팅 퀄리티가 구리다고 할 줄이야...;).

우선 조사한 단어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오토코요(御常夜)'
어상야. '어'는 공손/존경같은 의미를 주는 접두사이고, '상야'는 말그대로 '언제나 밤'이라는 뜻이죠. (이 '토코요(常夜)라는 말은 무슨 '神光머시기社'라는 문구와 함께 자주 나옵니다.)
'오시라님(おしら-さま)'
벽보의 중앙에 있는 여우귀신의 이름인데, 사전을 찾아보니 오시라신(おしらがみ )라고도 하는 민간의 양잠(養蠶, 누에치기) 신이라더군요. 실을 뽑듯 아이들한테서 에너지를 뽑는다는 뜻일까요...?
여우
일본에서 여우는 너구리와 함께 변신의 귀재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동시에 요물로도 여겨지지요. 벽보를 보면 꼬리가 많은 것으로 보아 구미호 류로 보아도 될듯?
그 외
'카쿠렌보'는 '숨바꼭질'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일본어로 '술래'는 괴물이나 귀신을 뜻하는 '오니(鬼)'입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이걸 '오빠(오니이상/오니이쨩)'의 중첩된 의미라는 추측도 있더군요. 사실 꼭 그렇게까지 생각 안해도 여자아이가 히코라의 여동생이 맞을거란 예측은 하고도 남습니다만(...).

일본의 독립 애니메이션 제작사 코믹스웨이브를 통해서 발매된 '카쿠렌보'는 모리타 슈헤이와 사지키 다이스케가 결성한 영상제작유닛 Yamatoworks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소규모인원이 만든 애니메이션입니다. 우선 엄청난 퀄리티에 놀라게 되는데, 영어게시판인 imdb측에서 움직임(애니메이팅)을 혹평하길래 상당히 놀랐습니다. 일본의 영상작품은 벌써 오래전부터 '분위기 창조'에 강점이 있다고 인정받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여기에서 '가면'이라는 선택은 탁월합니다. 얼굴이 그대로 나오면 이정도로 자연스러운 느낌은 주기 힘들었을텐데 그것을 스토리와 잘 결부시킨 것 같네요. 또 그것을 빼면 자연스러움을 보면서 애니메이팅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새삼 느껴집니다. 현대적인 느낌과 전통적인 느낌을 잘 섞은 감각. 색채나 연출, 빛, 미술, 음악, 설정 등 다양한 면에서 그로테스크하고 괴기스러우면서 또 음산한 귀기가 잘 서려있습니다. 이 다음에는 오오토모 카츠히로가 참여했던 [프리덤 프로젝트]에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네요.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어렴풋한 신비감과 이어지는 공포감을 간직하고 끝나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엔 딱히 메세지라던가 그런걸 갖고 있는 작품은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아이들의 에너지가 빨려서 불빛이 된다는건 물론 좋은 느낌이지만, 뭐랄까... 딱히 어떤 의미보다는 그로테스크함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뭐, 그것조차도 기술과 탐욕, 고립 등이 극단적으로로 발달한 세기말적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적절하기 때문이지만...

한가지 의문인 것은 - 다른 자질구레한 건 빼더라도 - 왜 마지막에 노시가(3인조의 두목)가 나오느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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