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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07

미나미가 (みなみけ) (1기) [2007]

by 노바_j.5 2009. 8. 10.
가벼운 작품은 그다지 보지를 않아왔는데, 마치 귀찮기만 하던 어린아이들이 어느 순간 예뻐지듯이, 이런 밝은 시트콤 풍 애니메이션도 어느 덧 보게 된다.

[미나미가(家)]는 사쿠라바 코하루(?場コハル)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고2-중2-초5 로 이어지는 3살 터울 세 자매의 소소한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내고 있는데, 초장부터 들이대는 "이 작품은 세 자매의 '평범한' 일상을 '담담히' 그린 작품이니, 과한 기대는 하지 말아달라"는 공지가 마음에 든다. [미나미가]는 [아즈망가 대왕]이나 [스쿨 럼블] 류의, 여학생을 중심으로 한 다른 코미디 물과 그 큰 틀은 비슷하게 가져가지만, 내용부터 표현까지 상당히 극성맞은 이들 작품들에 비해 '한 가족' 안으로 그 중심을 끌고 들어감으로서 좀 더 차분하고 일상적인 느낌을 내고 있다.

이런 상대적으로 '드라이'한 느낌은 스토리나 개그같은 내용 면에서만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좀 더 극화풍의 느낌을 살린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여타 애니메이션에서 코믹한 부분을 일순간 만화스럽고 귀엽게 처리하며 전달하는 것에 비해, [미나미가]에서는 포인트가 되는 순간마다 실사풍에 가까운 그림체와 명암을 집어넣음으로서 웃음을 자아낸다.

원작에서는 이런 그림체의 변화로 인한 개그는 비교적 두드러지지 않지만, 그 자체의 그림에서는 상당히 강한 느낌을 받았는데, 귀여운 인상과 실사적인 명암, 날카로운 선과 대비되는 텅 빈 공백 등으로 인해 어딘가 섬뜩한, 병적인 인상을 준다. 일단 페이스에 익숙해지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원작이나 애니메이션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원작이 감각적이라면 애니메이션 버전은 좀 더 건강하고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 애니메이션에서 맏이인 하루카는 좀 더 모성적인 느낌을 부여받으면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온화하게 보듬는다.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 [미나미가]에서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또 하나 원작과 애니메이션이 갖는 주요한 차이는 내용의 흐름이다. 원작을 보면 마치 4컷만화인 [아즈망가 대왕]을 만화잡지 한 회 분량 (약 여덟 쪽) 에 랜덤하게 담은 것 처럼 그 리듬을 짧게 끊어친다. 부분적으로 대사도 상당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비교하자면 한 컷 한 컷의 처리가 마치 애니메이션에서의 한 '씬'을 적당히 분할하지 않고 모두 몰아넣은 듯한 모양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좀 더 임의적으로 각 에피소드에 살을 붙이고 시간을 들여 이야기를 변주하는데, 덕분에 애니메이션 한 화당 들어가는 만화의 화 수는 셋에서 다섯 화 정도로 다양하며, 애니메이션의 각 화에서 이야기들이 나눠지는 분기점의 시간 역시 각 화마다 다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 제작진의 감각도 녹록치는 않아서, 그런 변화를 거친 뒤에도 [미나미가]는 매끄럽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개그를 선사해준다. ('니노미야 군과 선생님' 시리즈나 훈도시에 대한 묘한 집착 등, 작품 속 TV로 선보이는 개그는 그 중에서도 백미!) 독자적인 인물상을 구축하는 성우들의 연기나 타이밍을 빼앗는 연출도 뛰어나고, 애니메이션 판 [미나미가] 1기는 분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풍성하게 탈바꿈 시켰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원작으로부터 나오는, 비교적 현실적이면서도 개성이 뛰어난 캐릭터들과 작가의 예리한 감각이 바탕을 이루기에 가능하다.)

[미나미가] 1기는 원만하고 둥글둥글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미나미가] 시리즈의 애니메이션 기획이 재미있는 것은 처음부터 1기와 2기의 제작사를 둘로 나눠서 만들고, 추가로 제작된 3기 역시 새로운 스탭들을 주축 삼아 만들어졌다는 점인데, 이후 2기와 3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주로 새벽 2시 전후에 방영되었고, 화면 연출 등을 보면 대대적인 투자나 홍보가 이루어지지도 않은 듯 보이는데 작품을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끌어내었다는 점은 생각할 바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