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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1

소중한 날의 꿈

by 노바_j.5 2011. 7. 10.


수요일 9시 50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중한 날의 꿈]을 보았다.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영화가 시작하자 그만 머리 속이 새하얘져 버렸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아름답다...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어렴풋한 상(像)으로만 존재해왔던, "이런 작품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 라던가, "지키고 싶었던 소중한 그 무언가"가, 구체적인 형상을 갖추고 눈 앞에 흐르고 있었다. 압도적인 아름다움, 그러나 보는 이를 애써 압도하려 들지 않는... 얼마 전 유홍준 교수의 강연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檢而不陋 華而不侈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 라는 문구가 고스란히 떠오르는 풍경이었다. 디지털4K라는 포맷 때문에 더욱 와닿았던 것일까? 한없이 서정적이고, 흐뭇하며, 풍성한 그 감성.

심지어 터널 밑을 지나는 고물 수거차의 소음에도 "귀에 거슬리는 소리구나"라고 인지하지만 정말 관객의 귀가 거슬리게 하지는 않는, 절묘한 선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 세세한 곳들까지 두루두루 제작진의 정성이 스며들어있는 것이다. 스무 명 남짓의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마치 한마음으로 보는 듯한 느낌에 빠졌고, 스탭롤이 다 올라갈 때까지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보면서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을 동하게 했던 것은, 눈앞의 작품이 담고 있는 독보적인 아름다움과, 11년이란 세월 동안 작품 그득히 채워진 제작진의 마음, 그리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할 것 같다는 슬픔이 동시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따로 찾아가 푼돈이라도 보태드리고 싶을 정도로, 보는 나까지도 간절한 마음이 들었으나...


[소중한 날의 꿈]은 분명히 완벽한 작품은 아니다. 애니메이팅이나 스토리텔링 등에서 결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야기 면으로 보았을 땐, 과거회상 - 커플여행 시퀀스부터 시작하는 후반으로의 전환이 너무 갑작스러운 점이 아쉽다. [원더풀 데이즈]때에도 느껴졌던 일종의 기-전-결 같은 느낌. {[(이랑 - 달리기)-(철수 - 비행)]~공룡} 이라는 구도를 잇는 '끈'이 빈약하고, 더불어 감독이 꾹꾹 눌러뒀던 메시지가 너무 전면으로 돌출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어떻게든 자신의 정서적인 '톤'을 지켜내는 데에 성공한다. ([원더풀 데이즈]는 - 너무 진지하려 했던 탓인지 - 이 지점에서 처참하게 실패했었다.)

그러나 작품 속의 '삼촌'을 닮은 감독의 격한 자기주장은, 묵묵히 감내해야 했던 11년의 세월을 생각하면 부족할 정도이다. 예측컨데 이 작품은 스스로가 말하고자 했던 '공룡의 발자국'같은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11년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날의 꿈]은 그 몇배의 세월을 앞서나간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 감독 역시도 이 작품의 운명이 그리 될 것이라 생각한 듯 하다.


[여우비]가 등장했을 때에는 [태권브이] 복원판이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세우며 인기를 끌었고, [소중한 날의 꿈]이 등장한 지금은 [써니]라는 걸출한 대체 작품이 있다. 이번은 [써니]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 좋겠다는 바램 뿐이다. 잘 만들어진 2D 애니메이션이 '추억'이나 '꿈'이라는 소재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대중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나는 어쩐지 "장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이라던가, "한국 애니메이션이 여기까지 왔구나" 같은 말은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겨선수 김연아를 둘러싼 언론의 극성을 보면서 충분히 넌덜머리 나지 않았던가. [소중한 날의 꿈]이 일구어낸 지금의 성취는, 고스란히 안재훈 감독과 그 휘하 '연필로 명상하기' 및 관련 제작진의 몫이다.

공룡이 깊은 발자욱을 남긴 한 번의 힘찬 내딛음. 깨달음과 간절함, 결의가 교차하던 그 순간...
온전히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