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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07

초속 5센티미터

by 노바_j.5 2013. 5. 29.

얼마만큼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감성 돋는 캐치프레이즈와 작품. 『초속 5센티미터』는 신카이 마코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어필했던 작품으로 꼽을만 하다. '빛의 마술사'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환상적인 영상. 「별을 쫓는 아이」(지브리나 호소다 마모루 등의 영향이 느껴지는)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신카이 마코토식 미학은 이 작품에서 그 집약을 완성시켰다고 할까? 일본의 고급 전통과자(和菓子)를 보는 듯한, 극단적인 세심함으로 빚은 아기자기한 감성. 수시로 표정을 바꾸는 색채와 끊임없이 변하는 화면, 순간에 탐닉하는 컷분할, 보통 팬(Pan - 평면적으로 카메라가 이동하는 방식)으로 처리할 만한 장면들을 굳이 틸팅(Tilting - 회전) 등으로 보여주는 놀라움. 설령 사진을 리터칭해서 쓴다고 해도 이정도면 황송할 지경이다.

 

이런 감수성은 단순한 비주얼 퀄리티 이외에 내용면에서도 그러하다. 일렁이는 커텐의 느낌, 지하철 칸들 사이에서 여리게 덜컹이는 발판 등 그 소재도 그러하거니와, 흩날리는 눈발-기차 연착-거슬러가는 추억 만으로도 완벽히 구성되는 갈등의 고조(1부), 심지어 사운드의 '결'과 고요함에서도 이런 느낌이 가득하다. 2부에서 자매가 각각 봉고차와 스쿠터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비현실적으로 조용한 것도 그 감성을 해치지 않으려고 해서였나 싶을 정도. 예전에 「벼랑 위의 포뇨」나, 「코쿠리코 언덕에서」를 보면서 '러닝타임 내내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탄섞인 코멘터리를 할 수 있겠다' 싶었던게 이 작품에서도 느껴진다. 분명히 이 작품은 그 표현의 아름다움만으로도 볼 가치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어떤 감정의 극단이 아닌 어딘가 어중간한 지점을 찌르는 여운은, 여전히 불편하다. 타니자키 쥰이치로의 「음예공간예찬」이 비추는 지점[각주:1]이 어쩌면 여기와 같을까. 나름의 가치가 있어보이기는 하지만... 글쎄다. 애초에 단편 3개가 연관성이 없는 것들을 무리해서 이어놨다고 하는데, 1-2-3으로 갈수록 씁쓸해지는 것은 매한가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심각한 '개인화'가 느껴진다[각주:2]. 뒤로 가면서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 비슷한 느낌이 났는데 차라리 그런 식으로 (3자 구도 + 과거 거슬러오르기) 풀이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실제 삶에서 일정 부분 안고 사는, 어렴풋한 달콤쌉쌀함을 잘 그려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주인공 토우노 타카키는 20대 후반에 이르도록 아카리에 대한 기억 하나에 삶을 지배당한다. 보고 있다보면 옛 감정을 진즉에 좋은 추억으로 치환시켜버린 아카리가 좀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타카키가 그동안 뭔라도 했었어야 하는것 같은데…. 소설판의 얘기를 검색해보아도 타카키가 그동안 한 것은, 아카리 덕분에 생겨난 공허함을 어쩌지도 못하고 다른 여자들 후리고 다니기 정도? 이 작품을 보고나서 아무래도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어찌할 수 없는, 그리고 해소하지 못한, 주인공의 '찌질함' 때문 아닐까 (심지어는 거기에 달콤함을 느끼는 것 같은 모습까지도). 어찌보면 한없이 순수하고 섬세하지만, 그만큼 여리고 한군데에 몰두하기 쉬운 '오타쿠'의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표현이 훌륭하고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그와 그녀의 고양이」부터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까지의 필모그래피를 주욱 봐왔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감독 본인에게는 조금 아쉽다. 오랜 시간 추구해왔던 미학에 이 정도의 마침표를 찍었으니, 다음에는 좀더 의식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바램이다.


p.s. 1) 선호도는 1편-2편-3편 순.

p.s. 2)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는 우주와 별들! 대단하다(...).




  1. - 그늘도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 [본문으로]
  2. - 다만 실제로 이전까지의 신카이 마코토는 하드코어 1인 제작에, 당 작품도 극소수의 인원만을 동원했으니, 개인화에 대해서 나무랄 수는 없을지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