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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07

에반게리온: 서 - 1.11 You Are (Not) Alone

by 노바_j.5 2016. 7. 8.


묵혀두었던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3부작 완결이 아니었다니, 약간 망했다는 느낌이...;) 어차피 세세한 디테일이나 소위 '떡밥'에 관해서는 내가 다루고자 하는 부분들과 크게 연관되지 않으므로 (지금까지의 경과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건 어차피 안노 히데아키가 그때그때 꼴리는대로 휙휙 바뀌는 것들이다), 묵히지 않고 시청한 직후 바로 리뷰를 쓰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에바 제작진의 인간론, 혹은 성장론

「에반게리온 서」를 보면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것은 그 중심에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꼭 맞잡은 손에, 친구들의 응원을 전해들으며 웃는 신지를 옆에서 넌지시 바라보는 미사토의 미소에, 제작진의 의도가 한껏 담겨있다. 요즘 작품들에 깊이가 없어져서인지, 세월만큼 원숙해진 제작진의 성숙함인지, 마치 토미노 옹의 「G레코」를 볼 때 느꼈던, 충만한 '사람같은 사람'의 내음. '에바 서'의 경우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역시 미사토로서, 캐릭터의 연기 톤부터 세세한 리액션까지 가장 큰 변화를 보여주며 극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편집과 여출이 전반적으로 굉장히 빠르게 되어있지만, 전체적인 줄거리와 드라마의 기틀을 다시 제대로 잡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신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모든걸 계획했다는 집요함 정도를 제외하면 왜색도 그렇게 강하게 느껴지지 않고, 멋진 어른이 된 듯한 작품의 느낌이 참 좋다.


고품질의 퀄리티로 리바이벌된 옛 작품을 보는 감흥 역시 대단한데, 이 작품은 시청 환경이 좋을수록 시청각적 쾌감이 대단한 작품이다. 초호기를 탄 신지가 지상으로 올라올 때의 눈부심이나, 연출 방향에 따라서 층층이 다르게 마스터링 된 소리의 질감 등은, 감히 말하건데 어지간한 애니메이션에서는 꿈도 못 꿀 수준의 품질이다. 이야기와 연출이 원숙해짐과 더불어, 정확한 표현을 가능케 해 주는 이런 기술적인 완성도는 '정말 이게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라는 공감과 몰입을 가져온다. 이른 아침 안개낀 산 속에 홀로 파묻힌 느낌, 모든 불이 꺼진 뒤에 유달리 더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 등.


동시대에 볼 수 없었던, 시대를 풍미했던 마스터들의 참전도 고전적인 매력을 한껏 살려준다. 사기스 시로우의 악곡 스타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이번만큼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잘 어울릴수가! 특유의 살짝 고풍스러운 느낌이 에반게리온의 그로테스크한 질감과도 너무 잘 어울리고... 무심코 '대단하긴 대단하구나'하고 중얼거렸다. 이제는 접하기 힘든 제작진과 성우진, 우타다 히카루 등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


이 정도 작품이 더 보고 싶은데 찾기 힘들다는 것은, 역시 이래서 명작인 것일까...? 자본과 기대치가 충분하니까 이런 작품이 나오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만드니까 그만큼의 인기가 따라붙는 것일까. 에반게리온 이후 시대적인 파급력을 지닌 작품은 아직껏 나오지 못했고, 전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에반게리온 프랜차이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최고봉이자 최선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느낌이다. '우린(일본애니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것 같아, 보고 있노라면 사뭇 여러 감정들이 교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