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06~2010/2007

지니어스 파티 (Genius Party)

by 노바_j.5 2012. 7. 31.



능력있는 감독들을 모아서 자유롭게 창작할 공간을 준다는 이런 프로젝트는 1987년작 『로봇 카니발』이후... (헉, 25년이나 전 일이라니!) 오랜만에 본다. 도전적인 스튜디오 4˚C의  (역시나) 멋드러진 기획인데, '로봇'을 주제로 삼아야 했던 로봇 카니발과는 달리 이번에는 최소한도의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풀어주었다고. 주목받는 7인의 감독들의 스타일을 번갈아 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돈은 대체 어디서 나는거야


표제작 「지니어스 파티」는 후쿠시마 아츠코 특유의 동화적인 질감과 감각을 보여준다. 「샹하이 드래곤」은 카와모리 쇼지답게 충실한 비주얼과, 진지한 깊이는 없지만 무난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SF적인 상상력과 최첨단 기술의 차용 등이 드러나며, 가장 대중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중국이라는 문화적 배경이 색다른 맛을 내기는 한다.) 키무라 신지의 「데스틱 포(4)」는 그야말로 미술감독스러운, 시청자를 콕콕 자극하는 시각적 요소들이 한가득 담겨있는데, 디자인이나 연출의 아기자기한 맛만 배제하면 거의 일본 냄새가 안난다.[각주:1] 국제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제 등의 시각으로 보자면 가장 글로벌한(?) 느낌 아닐까.


가장 문제작은 역시 후타무라 히데키의 「리미트 사이클」이었다. 창의적이라기보단 극단적이라고 해야 하나... 보다가 잠들었는데 일어나서도 다시 안보고 깔끔하게 지나간 건 어째서였을까(...). (혹시 뭐 놓친게 있나 휙휙 건너뛰면서 훑기는 했다.) 이 지니어스 파티 프로젝트는 각 감독들의 전문 분야가 무엇인지 상당히 명백하게 드러나는데, 이 작품 역시 '비주얼 디자이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백남준 선생님 작품들과 흡사한 느낌일 듯.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나머지 세 작품 - 후쿠야마 요지의 「도어 차임」, 유아사 마사아키의 「꿈꾸는 기계」,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베이비 블루」였다. 특히 꿈꾸는 기계는 우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 살짝 부담스러울지 몰라서라기보단 베이비 블루가 얼른 보고 싶어서 마지막에 보았는데, 천재는 괜히 천재소리 듣는게 아닌가보다 싶었다. 인터뷰를 보면 그냥 가볍게 즉흥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단순한 경외심에서가 아니라, '삶'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정말 다이렉트하게... - 마치, '사상'에서 '표현'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한 줄기 신경으로 곧바로 연결된 듯한 - 직관적으로 펼쳐놓았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베이비 블루같은 경우는 뭐랄까, 음... 독특했다. 사실 맡은 작품들이 워낙 굵직해서 그렇지, 와타나베 신이치로는 아직 제대로 감독한 작품이 서너 작품밖에 안된다.[각주:2] 개인적으로 작품 스타일이나 취향 등에서 굉장히 동질감을 느끼는 감독인데... 베이비 블루같은 경우는 그냥 그대로 실사영화화를 해도 무리가 없을만한 작품이다. 그런 실사영화풍의 질감을 어떻게 애니메이션으로 가져와서 소화하는지가 인상적이었는데, 영화적인 연출, 실사적인 비주얼, 배우의 성우 기용 등 여러 면에서 그런 면들이 돋보이지만, 특히 전반적으로 억눌려 있는 작품 톤에 '불빛'(수류탄 - 불꽃 - 기차의 별빛(?))으로 감정의 분출을 대체시킨 점이라던지, 후반의 슬로우 기법, 마지막 한 프레임의 얼굴 속에 미묘하게 스쳐지나가는 미소 등으로 느낌을 살짝 비틀어준 것 등은 정말 발군이었다. 뻔해 보이는 이별 이야기를 이런 수많은 작은 요소들로 툭툭 눌러서, 영화 이상으로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느껴지는, 일반 대중애니메이션보다 훨씬 실제의 삶에 가까운 정서. 무언가 요소를 지목하면서 새롭다고 할 만한 것은 없지만, 와타나베 신이치로의 이런 전체적인 감독 방향 자체가 참으로 (느끼기는 힘들어도) 신선한 것 아닐까.


후쿠야마 요지의 도어차임 같은 경우는 아무 생각 없이 봤다가 참 인상적으로 다가온, 지니어스 파티에서 가장 큰 발견이다. 정말 '만화적인' 감각으로 표현한 애니메이션! 좀 더 정적이고 여백이 감도는 분위기와, 작가의 필체가 느껴지는 듯한 섬세함. 작품을 만드는 측면에 있어서 정말 좋은 대안적인 느낌을 제시해주는 것 같다. 중요체크!



  1. 아예 극중 언어 자체가 일본어가 아니다. [본문으로]
  2. 이런 점은 생각해보니 정말 묘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