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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10

기동전사 건담 UC (Unicorn) - 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노바_j.5 2016. 1. 16.

많은 관심을 받았으나 오랜 제작기간과 마지막 화의 과도한 연출로 인해 팬들의 반응도 약간은 애매하게 식어버린 『기동전사 건담 UC』.


일단 기합은 팍팍 들어간 만큼, 2010년 대의 괴물같은 퀄리티의 작품들이 난무하는 와중에서도 영상이나 음악이나 모두 한 차원 위의 퀄리티를 보여준다. 실시간으로 기다리며 보았다면 다음편을 기다리느라 맥이 빠졌겠지만, 간만에 OVA 다운 OVA 였다는 느낌. 특히 1화의 크샤트리아 전투 씬은 정말 언급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을 정도. 기존 건담 팬 여부를 떠나서 보는 사람을 한방에 훅 가게 하는 임팩트를 자랑한다.


후반으로 흘러가면서 퍼스트 건담의 등장인물들 (+ 벨토치카)도 직접 나오지만, 이 작품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80년대 건담 작품들에 대한 오마쥬로 가득 찬, 원조 우주세기에 바치는 헌사 그 자체이다. 건담의 존재를 말그대로 '전장의 행방을 좌우하는 열쇠'로 정의한 것 역시도, 그동안 건담이라는 기체가 작중에서 지니고 있었던 상징성을 본질적으로 꿰뚫는 설정이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80년대의 건담이 가졌던 정신을 계승하면 이런 작품이 나오겠거니... 싶기도 하지만, 자체적인 완성도도 약간은 미흡하고, 특유의 진지함은 좋았지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제대로 잡히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TV 판의 호흡으로 OVA를 만든 느낌인데, 기존의 세계관을 얼마나 차용하고 어디까지를 자체적인 설명으로 가져갈지에 대해서 명확한 선을 긋기가 애매했던 것 같다.


가장 아쉬웠던 건 역시 오버스러움이다. 전체적인 플롯이나 구성, 캐릭터 등 모두가 상당히 인상적이고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그런것인지 국면 국면에서 분위기는 잘 만들어놓은 다음에 약간 신파적일 정도로 과한 대사를 치면서 거기에 편승해 이야기를 진행시켜버리는 부분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주인공 커플인 버나지와 오드리의 예를 들자면, 둘이 찐~한 (감정적으로) 사이가 될 예감이 들기는 하지만, 아직 딱히 그럴만한 전개나 상황도 보여주지 않았데, 뭔가 이미 격하게 서로를 아끼는 듯한 언행을 보여주고 난 다음, '자 그러니까 얘네는 이런 정도의 사이야. 알았지?' 라면서 이후엔 그것을 전제로 깔고 나아가는 꼴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어떻게든 전체적인 파악은 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제대로 된 몰입은 방해받을 수 밖에 없다. 보면서 각본, 아니 대사 만이라도 다른 사람이 써주면 안되었을까 바랬을 정도니... 그나마 주요 인물들 중에 이런 데에서 자유로운 건 마리다 크루스 정도? 아무래도 피동적인 면이 큰 캐릭터이다 보니.


극후반에 건담들이 무장을 상실하고 당랑권!!맨주먹으로 싸운다던가, 등장인물들의 초점이 결국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맞추어지는 등, 원초적인 느낌으로 회귀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사운드트랙에서도 토속, 원시적인 느낌이 많이 강조된 편이라... 문제는 그 이후 원초성을 넘어서 초자연적인 면모까지 넘어가서 그렇지(...). '기적'이란 부분에서는 역습의 샤아에서 보여준 액시즈 밀어내기에 많이 기대는 / 핑계삼는 느낌인데... 따지고 보면 뭐 안될 것도 없겠다 싶기는 하지만, '깨는' 걸 어쩌랴(...). 다만 근본적인 문제는, 위에 얘기했듯이 수시로 분위기를 깨먹으면서 이야기의 개연성을 약화시켜버린 탓이 커 보인다. 하여튼 예고가 부족하다.


원조 과거작들과의 대비에서는 역시 멘탈적으로 튼튼해진 주인공과 나름 깔끔한 해피엔딩이 돋보이는데, 시대상을 비추어보면 '오히려 예전에는 사회가 풍족하니까 이야기가 좀 음울해도 괜찮을 여유가 있었고, 지금은 정말 힘드니까 작품이 건강하고 긍정적이어야 하는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어찌되었든, 80년대의 건담들은 결국 '애들 보라고' 만든게 맞고, 시간이 흘러 지금의 『기동전사 건담 UC』는 정말로 '어른들이', '어른들 보라고' 만든 작품 아닌가. 뒤로 갈수록 부각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それでも)" 라는 대사는, 주변 상황이나 사회에 휘둘리지 말고 네 믿음과 생각을 관철하라'는, 자주성을 북돋아주는 말 같기도 하지만, 거꾸로는 '그지같은 세상 별 뾰족한 수 없다, 일단 그냥 X나게 버텨봐라'는, 소위 '존버정신' 을 부르짖는 말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