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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10

케이온!! (2기) けいおん!! / K-ON!!

by 노바_j.5 2012. 12. 30.

근래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케이온!」(1기)의 기세를 몰아 제작된 「케이온!!」(2기). 처음엔 오프닝만 보고서 땡기지 않아 묵혀뒀으나 문득 생각이 나서 보게 되었다. 그러나...


탄력 잃은 티타임

2기와 비교할 때 1기 「케이온!」에서 주목할만 했던 것은 단연 '스토리의 축'이 있다는 것이었다. 미약하더라도 1기에서는 '악기를 모르던 소녀가 - 경음부를 접한 뒤 매력에 빠지고 - 열심히 연습을 해서 -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다'는, 기본적인 기승전결이 갖추어져 있었다. 2년을 1쿨에 집어넣은 스피디한 진행과, 비교적 다이나믹한 전개 (바다로 간다던가, 신입부원의 가입) 등, 작품으로서 나름 탄탄한 스토리 구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2기 「케이온!!」은 처음부터 끝까지 '현상유지'에 머문다.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작진은 2기에서 여성적인 감성을 가득 채워넣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사소한 몸가짐이라던지 인물들의 심리라던지, 같은 여성이 아니라면 절대 나올 수 없을만한 섬세한 부분들의 묘사는 주목할 만 했으나, 기본적으로 옴니버스에 가까운 이야기 구성에, 음악이나 밴드활동이 아닌 100% '일상물'에 가까운 작품이 되어버렸다는 것은 작품이 가진 매력을 너무 단순화시켰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과 끝 부분의 과도한 감수성은 손발이 오그라들고(...), 작중에서도 계속 언급할 정도로 연습은 안하면서 본방 때는 훌륭하게 해내고 하하호호 분위기로 가는 것은 뭐랄까... 너무 소녀적인 망상에 젖어있는 것 아닐까 싶기도. (어쩐지 「텔레토비」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약간...)


물론 이 천재소녀들이 무슨 무도관 라이브를 목표로 혼을 불태우는 그런 전개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학원제이든 락 페스티벌이든 수험공부이든, 주요 이벤트나 소잿거리에 있어서도 「케이온!!」은 그 대상에 집중하기보다는 단순히 일상적인 즐거움의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같은 의미로, 시나리오 구성은 시간 순서에 충실히 따르기는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가 연결이 된다거나 서로 영향을 미치는 모습보다는, 그냥 그때그때 '아, 그렇구나' 하고 말기에 「케이온!!」2기는 성장물로서도 보기 어렵다. 말그대로 소소한 티타임같은 애니메이션. 맨날 쳐묵쳐묵... 살이라도 찌면 현실성이 있으련만 「케이온!!」2기는 1기에서 이어받은 탄력으로 굴러가지만, 자체적으로 추력을 더하지 못하고 1기의 탄력을 소진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그렇다고 이 2기가 죽어 마땅한 애니메이션이냐고 묻는다면 꼭 그런것은 아니다. 수직적인 구조에서 탈피해서 사와코, 위험한 아이 우이, 노도카쨔응♡,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드나들 공간을 열어주고 (심지어 엑스트라급인 클라스메이트들에게도 어느정도의 시선이 주어진다), 부원 5인방에게도 좀 더 균등한 매력발산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것은 캐릭터 중심의 애니메이션으로 보았을 때엔 충분히 인상적인 부분이다. 다만 「케이온!!」이 헤매고 있는 것은 이것이 「미나미가」나 「WORKING!!」같은 본격 개그물도 아니요, 그렇다고 「BECK」같은 음악 애니메이션도, 학원연애물이나 성장물, 순정물도 아닌... 즉, 감상할 포인트가 없다는 점이다. 외적인 퀄리티나 캐릭터들의 매력은 훌륭하지만, 조금만 전개가 쳐져도 바로 지루해져 버린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타이나카 리츠의 다이나믹함이 유난히 안쓰러운 돋보이는 걸지도.) 오히려 다음 기수가 제작된다면 그것이 아즈사의 신 밴드 중심이든 유이들의 대학생활 중심이든, 새로운 배경 속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기대할 만 하지만, 추진력을 잃은 지금 상황에서 섣불리 제작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히라사와 가의 교육방침

「케이온!!」을 보고 있으면 학부모가 나오는 일이 없는데 학부모의 간섭이 없는 좋은 아니메, 그 중에서도 히라사와 가의 어른들은 유독 두드러진다. 유이의 못미더운 품행 덕에 더욱 신경 쓰이기도 하지만, 미성년 딸들을 두고 부부끼리만 해외 여행을 훌쩍 떠나는 둥...딸이 고3이라고 어이 그런데 문득 현실적인 시각으로 「케이온!!」을 보고있다 보면, 이렇게 키우는 것이 천재를 키워내는 방법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히라사와 자매들은 작중 최강의 슈퍼탤런트 소유자들이지만(...). 사람들이 - 특히 한국에서는 -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해서 고민하는데[각주:1], 아이가 자신의 재능에 눈뜨고 매진하게 하려면 - 인성교육만 바르게 되었다면 - 아이가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몰두하게 내버려두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이 있을까? 히라사와 유이는 사실 전형적인 천재 캐릭터에 가까운데, 이런 유형의 인물은 실제로 뭔가 구체적인 비전을 보면서 노력한다던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나 자각이 부족하다는 점이 묘하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계속 파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었다."라는 식이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삶의 모델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한국 부모 아래에서 유이같은 아이가 나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반면, 이것은 그만큼 사회안전망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에선 유이같은 애 잘못 뒀다간 이런 꼴 나기 십상이니까.



★☆




  1. 심지어 30세 전후의 직원들이 꿈을 찾아서 퇴직하거나 학교로 돌아간다는 기사가 나온 적도 있다. 1~2년 쯤 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