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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2010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 (四畳半神話大系)

by 노바_j.5 2012. 7. 17.

독특한 느낌과 유아사 마사아키라는 감독에 끌려 보게 된 작품. 예전에 보다가 중도포기한 『망상대리인』같으면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히 훨씬 더 매끄럽게(?) 정제된 작품이어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차츰 늘어난 '탈덕권유'형의 스토리이지만 루프/분기물로 이루어진 구성과 스토리 전달이 굉장히 흥미진진하고[각주:1],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의 연출이나 나카무라 유스케의 캐릭터 디자인도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혼자만의 생각 안에 틀어박혀 있는 주인공 '나'는 어떤 현실에서도 온전히 정착하지 못하고 항상 망상만을 쫓는다[각주:2]. 그 덕분에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입장이 되지 못하고 '내 (이상향적인) 생각과는 다르다'면서 수렁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항상 '나쁜 친구' 오즈를 탓하지만, 사실은 작품 초장부터 히구치 사부가 지적하듯, 그렇게 남 탓 할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기묘한 스토리가 마지막에서 하나로 합쳐질 때, 모든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배제시켜도 아구가 맞아돌아가는 것은 바로 오즈가 있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해서 본질적으론 동류의 존재인 오즈가 모든 상황을 주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둘의 삶과 현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온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곧잘 하는 '이랬으면' 혹은 '저랬으면' 하는 푸념을 몽땅 들어줘봤자,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는 것이고, 결국은 본인의 그런 마음가짐이 필연적인 불행을 낳게 되는 것이다.



루프와 평행세계를 떠나서 보더라도『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의 세계는 그 자체로 이미 비현실적이다 (각종 동아리 활동이라던가). 덕분에 이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스마트하게 흐트릴 수 있었고, 완결에 이르러 모든 세계를 통합하는 과정은 '세계관의 현실성'이 아닌 '이야기의 완전함'으로, 그동안 보여준 다양한 세계들은 '인간의 다면성을 보여준다'는 개념으로 귀결된다. 주인공의 태도부터 실질적인 결과까지, 단순히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역반대의 변화를 일으키는 마지막 화는 자체적으로도 엔딩과 오프닝을 거꾸로 쓰는 등 혼연일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작에서 제작까지의 탄탄한 실력과 완성도, 저예산 (아마도), 전방위적인 대중성과 예술성의 겸비까지, 이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는 일면 '대안 애니메이션'같다는 생각이 든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현실을 깨닫고 그 괴리에 어쩔 줄 몰라하는 지금의 나에게 있어선 특히나 많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다른 분들의 리뷰글 두 편과 관련(?) 인터뷰 글을 링크하며 글을 마친다.



giantroot 님의 100번째 창문: http://giantroot.pe.kr/1085

Leviathan 님의 Color of Life: http://leviathan.tistory.com/1501


서브컬처웹진 프리카 - 매드하우스 제작데스크 김현태 님 인터뷰: http://prica.gameshot.net/48902



  1. 한 화 한 화를 거듭하면서 세계관이나 인물들 자체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는데도, 묘하게 조금씩 꼼지락거리는 듯 변화하는 것이 재미있다. [본문으로]
  2. 첨언하자면, 주인공의 넘치는 대사들은 사실 무의미한 허언에 가깝지만, 자아에 갖힌 사람이 생각하는 과정을 이렇게 세밀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하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