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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6

주토피아 (ZooTopia)

by 노바_j.5 2017. 1. 5.

유리천장, 성별 다음은 인종이다.

비단 박근혜와 힐러리가 아니더라도 지난 몇년 동안 '유리천장'이란 단어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지금의 유리천장이란 단어는 여성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씌여지고 있지만, 사실은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적 편견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종차별' 되시겠다.

성별이든 인종이든 기본적인 문제는 차별에 있지만, 아직도 사회적으로 해소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구별'과 '차별'을 혼동해서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 혹은 각종 인종들이 모두 같은가? 그렇지는 않다. 그들이 모두 평등한가? 이것은 그렇다. 해답을 찾는 것은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주인공인 주디는 전례가 없는 '토끼경찰'이 되고 싶어하지만,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엔 신체적 불리함이 너무나 뚜렷하다. 경찰사관학교에서 고군분투 하는 주디의 모습은 최소한의 연출로 빠르게 지나가지만, 이 부분은 의미적으로 보면 굉장히 크다. '포기할 줄 모르는' 주디는 결국 자신만의 해법을 찾는데, 개척자의 입장에서 이렇게 자신의 해법을 찾고 성공적으로 완성시킨다는 것은 말로 다 하기 힘든 노력과 고통,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물론, 어느정도 평등이 보장되는 학교와 다르게 사회(주토피아)에 나오면 진정한 관문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뭐랄까... 기존의 이야기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서럽게 울고 있을지도 모를 차별의 희생자들에게 던져지는 해답은 맥빠질 정도로 간단하다: "결국 네가 존나 빡세게 알아서 할 문제다. (= 남들이 도와주고 그런거 없다.)" 

'아니, 혼자 애쓰는 얘기가 재미있을 거 같진 않지만, 정말 이렇게 쿨해도 되는거야?' 싶은 찰나... 『주토피아』가 특별해지는 지점은 그 다음에 있다. 바로 관객에게 거꾸로 찔러보는 것이다. "야 근데 있잖아, ...혹시 너는 차별을 하는, 가해자 아닐까?" 하고.

'선해 보이고 선한', 그리고 '악해 보이고 악한' 경우는 진부하다. 나무늘보 사무원이나 치타 경관, 마피아 보스 등의 가볍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들도 줄곧 나오지만, 디즈니는 이 작품에서 끊임없이 관객들의 믿음에 도발을 건다. 작중에서 주디가 심정적으로 가장 큰 충격과 변화를 거치는 부분 역시도 스스로 부지불식간에 닉을 '여우'라는 편견의 틀에 맞추어 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백미는 이 작품의 진정한 흑막에서 나타난다. 편견의 양면, 즉 '약해보이는' 사회적 이미지를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려 하는 악역의 모습은 그야말로 섬뜩하다. 상기한 성차별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이런거다. "당신은 여자라는 입장을 역으로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고 하지는 않았는가? 정말 아닌가?"

악(惡)하지만 남들이 선하게 보는 경우, 선(善)하려 하지만 남들이 모두 악하게 보는 경우. 닉 같은 후자는 이렇게 역차별에 몰릴 때 더 이상의 구원이 없는 곳에 몰리기 쉽다. '포기할 줄 모르고' 뜻을 이룬 주디보다도 이들의 상처가 더욱 아물기 어렵고, 지레 스스로 포기하고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다.

차별의 문제는 언제나 피해자의 목소리로부터 시작하고, 또 그래서 피해자의 사연에만 쉬이 집중하게 되지만, 해답을 찾는 것은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 편견에서 자유로운 존재일까? 그동안 나도 모르게 계속 가해자로 살아온 것은 아닐까? 

'인상'을 극단적으로 활용하는 매체의 특성상,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편견에 기대지 말 것'이란 명제는 굉장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주토피아』는 이것을 기가 막히게 잘 활용했다. 심지어 밝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호평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p.s. '완전한 평등'에 이르지 못한 지금 생각할 거리 한 두 가지:

1) 작중 상황에서 '생물학'과 유전, 수천 수만년동안 이어져왔던 관습에 연관성을 찾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일까 아닐까? (일단 주디가 인터뷰 자체는 잘 못했다고 보지만)

2) 같은 맥락에서 '진화'와 '이성'은 우리 인류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주토피아와 현대 인간사회를 비교해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또다른 편견의 대상인 장애인으로 잠깐 눈을 돌려보면, 예전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일본 영화를 본 뒤에 상대적으로 복지가 좋은 곳에서 살았던 나와 지인의 감상평이 일치한 적이 있다. 요는 '장애인에 대해 편견이 있어야 제대로 감상(혹은 감동)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도 장애인들이 있었고, 구김없이 밝은 사람들도 많이 보았지만, 역으로 자신이 보통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는 걸 이용하는 이도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우길 경우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세간에서 교사들이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