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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5/2011

도쿄 구울 (+ :Re) (만화판) (東京喰種 トーキョーグール)

by 노바_j.5 2018. 2. 28.

한 2~3일간 미친듯이 독파한 도쿄 구울. 몇년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다지 땡기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한번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보았다. 애니메이션 2기가 망(...)이라는 이야기를 보고 만화 버전으로.

- 굉장히 오랫동안 연재중인데, 처음 연재 당시에 어디까지 내다보고 시작했을지가 궁금하다. '드래곤볼'처럼 깔끔하게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엄청난 수의 떡밥이 항상 뿌려지고 있었고, 동시에 분명 여기까지 처음부터 키울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이 공존한다. 어쩌면 전체 이야기의 틀이나 스케일은 어느정도 구상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적인 측면에서 방향을 몇번 바꾼 것 아닐까 싶은데... 어찌 되었든 이번에 리제와의 다툼이 끝나면 종결되지 않을까 싶다. 수미상관을 맞추는 유종의 미까지 넘어가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아닌 듯 하니. 그나저나 굳이 세카이 /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야까지 나아가야 했나 하는 생각은 든다.

- 우스갯소리 삼아 작가를 '스이코패스'라고 부르는데 이는 단순히 주요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썰려나간다는 것과 동시에 (후술하겠지만 이 부분은 단순 이미지에 가깝다.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보인다)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 아닐까 싶다. 동시에 이 정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서도 분명히 편집부의 영향도 강하게 들어있을 것이고, 연재를 순수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에 연민과 가까운 기분이 든다.

- 대표적인 단점으로는 너무 복잡하고 변화가 많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과 전투신에서의 가독성. 후자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전자의 경우는 무슨 인물도감을 따로 만들어가면서 봐야 하는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없다. 이름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안그래도 등장인물이 엄청나게 많고 관계도 얽히고 섥혀있는데, [성 / 이름 / 이명 (혹은 계급) / 무기 명] 등이 섞여서 쓰이는 식으로,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지만 독자에게 작가 수준의 이해와 파악을 요구한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나 과거/현재 간의 전환 등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떡밥 등에서도 보이듯 이런 과다한 정보량은 파고 들어갈 부분이 많아서, 어느 의미로는 덕후들이 더 열광하며 빠져들 수 있는 요소.

- 장르적 특성들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들은 '삼국지'와 '듀라라라!' 정도일 것 같다. 관통하는 주제(차별과 어두운 내면의 극복 등)는 굳건하게 유지되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스케일의 군상극에 가까워 보인다. 사실 이 정도 이야기를 이 정도 분량으로 소화해내는 걸 보면 그 난해함이 충분히 이해가 갈 정도.

- 이렇게 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이 얽혀있다 보니 '너무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져간다'는 느낌도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의외로 굉장히 '이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어찌보면 작품으로서 약간 아쉬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일례로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나쁘거나 미치거나 막나가는 듯 보여도, 결국은 이해 혹은 구원을 받고 광명을 찾는다던가... 그래서 만화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까지 할 수 없는 현실과의 대비가 약간은 씁쓸하다.

- 고유명사도 많지만 인물들도 [인간 / 구울 / 반구울 / 반인간 / 쿠인쿠스 / 오가이] 등으로 구분도 복잡다단하고, 한 인물이 인간이었다가 죽은 줄 알았는데 다른 형태로 살아있다던가, 구울도 죽은 줄 알았더니 살아있었다던가 등 이래저래 복잡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체적 스케일이나 이런 인물의 변화 등을 비추어 보면 의외로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소멸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 파워 인플레 / 밸런스 문제에서도 드는 생각이지만 결국 작가의 초점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타당한 근거나 인물의 역할 제시를 가장 중심에 잡고 있고, 이 판단은 비난할 수 없다. 희생 역시 이를 위한 거의 최소한의 수치에 가까워 보인다. 회복력이 강한 구울의 특성도 있어서, 이 작품은 순수한 비극이라기보다는 비극적인 '충격'을 많이 주는 작품이고, 겉으로 보이기보다는 상당히 밝고 따듯하다. 적어도 독자들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범위에 한해서는.

- 인간과 구울간의 간격을 이렇게까지 세분화시키고 뒤섞어 놓다보니 결국 인간과 구울간의 근본적인 갈등은, 좀 밝게 이야기하면, '구울이 다른 걸 먹을 수가 없다'는 것 정도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부분은 '능력적인 차이'는 이미 논외로 넘어가버렸고...) 그리고 작가는 전 인류의 구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 부분을 정확히 파고 들어간다. 아마 '리제~용'에 관한 이번 이야기가 끝나면 정말 매듭을 짓지 않을까 싶은 또 다른 이유이다.

- 의외로 이 작품에서 가장 눈이 가는 부분, 작가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사랑' 아닐까 싶다.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인물간의 사랑에 대한 묘사가 가장 극적으로 돋보이고 또 자주 나타난다. 가장 숨막히는 에피소드는 125화다.[각주:1]

그리 중요한 부분은 아니겠지만, 액션이나 스케일, 이야기의 논개전리 등에도 충실하면서 전반적인 섬세함이나, 내면심리나 관계묘사, 사랑에 대한 집중도 등도 겸비하고 있어서 상당히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만화다.


  1. 아주 농담은 아닌것이, 정말 묘사를 잘 해놨다. 아마 만화에서 본 정사씬 중 가장 뛰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와... 프로는 프로구나' 하는 찬탄이 흘러나오게 만든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