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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5/2004

감상 :: 사무라이 참프루

by 노바_j.5 2005. 7. 12.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후반 에피소드들이 나왔습니다.

아아... 잘 봤다....라고나 할까.
멍~하니,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동 감독의 전작인 카우보이 비밥에 미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멋졌습니다. 다른 애니메이션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요. 뭔가 다른 세상이라고나 할까.

요즘은 보기 힘들다고 생각되는, 3인조 파티의 구성도 뛰어났습니다. 캐릭터들의 매력도 발군!

사무라이 참프루를 이루는 가장 큰 요소와 영향은 캐릭터 디자이너 / 작화 감독을 맡은 나카자와 카즈토씨와, 비단 그만의 것은 아니겠지만은, 그 '감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간 중간 들어있는 코미디성 에피소드 들에서도, 억지스럽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웃을 수 있게 하는 느낌, 정말 좋았어요. (사실 참프루를 즐기는 데에는 사무라이나 일본 고유의 문화, 역사 배경 등을 그다지 알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편한대로 써먹을 수 있는 매력적인 껍데기이죠.)

참프루의 가장 큰 특징과 매력은 역시 사무라이와 힙합의 만남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중적이지 않은 이유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힙합, 흑인문화라던지... 일반 애니메이션 팬들이 익숙치 않은 세계를 매력적으로 섞어놓은 것이니까요. (의외로 사무라이 참프루가 그저 그렇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아마도 민족이다 학교다 군대다 해서 소속감과 단체의식이 강한 한국 풍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힙합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내세우는 '한'의 정서를 내포합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갖고 있는 뿌리나 정체성이 없습니다. 그 곳은 빈 공간이고 허무함입니다. 힙합은 그 한과 상실감, 허무함은 어디까지나 속에 묻어둔 채, 각박한 현실 속에서 그저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면서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하는거지요. 그리고 그것은 사무라이 참프루를 관통하는 분위기와도 직결되며, 정처없이 그냥 흐르는대로 떠도는 주인공들의 여행이나 주인공 자신들과도 이어집니다. 공허한 힙합의 세상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단 하나의 존재에 대한 믿음과 신념 이외에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동지' 뿐이니까요. 그것은 이미 피로는 이어지지 않았을 망정 일반적인 '가족'의 개념을 뛰어넘는 연대감을 낳습니다. 하지만 그 언제까지라도, '나'라는 개인의 존재가 지탱해야 하는 독립성과 자주성이라는 끈을 놓을 수는 없지요. 힙합 특유의 폼잡는 듯한 모습이라던지 몸동작은 홀홀단신으로 자신을 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드러낸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에게 바랄 수 없는, 자기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 고독함은 현대 사람들과 연결됩니다. 힙합과 흑인문화, 음악이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끄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하향세지만요)

주인공들의 얘기로 돌아가면, 무겐과 후우, 진은 모두 나름의 아픈 과거를 갖고 있고 우울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그런 것은 어찌됐든 좋아'라는 식으로, 그것을 얘기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단지 현실을 흘러가는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인하는 뿌리나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 뿐인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셋을 묶는 끈이자 유일한 공통점이지요. 하지만 이것 만으로도, 그들은 자질구레한 얘기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상실감은 갈망이 되고 그리움과 울분이 되어 마음 속에 남게 됩니다. 후우만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뿌리가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찾아가는 겁니다. 무겐과 진 역시 갈망을 해소하기 위한 여행에 동행하고 얽혀갈 수 밖에 없지요. 그리고 무겐과 진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동지'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위에 말했듯이 세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버릴 수는 없는거지요. (오프닝에서도 주인공들이 제대로 같이 나오는 장면은 없습니다.)

그래서, 엔딩은 미흡하다고 느껴져도, 뭐랄까요... 그런거다...라는 느낌이달까. 틀리지는 않다고 생각됩니다. 셋이 계속 돌아다니길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뭐가 되는것도, 특별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상 외로 여운이 많이 남습니다. 셋은 언제까지나 자유롭게, 혼자서, 랄까요. 아버지를 잃은 후우는 이제 진정한 혼자가 되었고. "또 만나자"고들 하면서 헤어졌으니, 떠돌다 보면 다시 만날 날도 있겠지요.

24화에서 모닥불을 피고 진과 후우가 얘기하는 부분이, 생각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다치 미츠루씨의 H2 후반에서의 대화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후우, 만약 내가..." / "하지만 무겐이...!" "미안... 미안해" 세 주인공들에 대해서라면, 그 부분 즈음이 클라이막스이자 연재 이후로 (어쩌면) 이어지는 종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후로는 스토리 자체를, 나머지 대단원을 이끌어나가고 끝내기 위한 진행이었고 말이지요.

그런데 헤어진다고 하면, 무겐은 그 첩자 쿠노이치(여닌자)가 있고, 진도 도중에 만난 몸팔던 아가씨가 있지만, 생각해보면 후우 혼자 다시 외톨이로 남는군요. (뭐 그렇다고 무겐이나 진이 꼭 그 사람들을 찾아간다는 것도 아니지만)

강하게 살아가고, 모두 행복하기를...




해바라기는 언제까지나 태양을 바라보는, 그리움의 꽃이죠.
하지만 코러스에 문득 튀어나오는 "I don't want to sunburn"이란 말은
후우 일행을 대변해주는 대목인지도 모릅니다.
태양을 그리워하지만, 태양빛에 타고 싶지는 않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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