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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5/2002

푸콘가족 (오! 마이키)

by 노바_j.5 2008.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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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텔레콤 선전에 나오는 마네킹 가족. 그들의 정체가 바로 푸콘 가족이다. 쇼프로에 심심하면 나오는 [카우보이 비밥] 음악들부터 최근에는 어느 아파트 광고(?)인가에 나오는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극장판 수록곡인 Sora까지, 우리는 참 알게모르게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를 많이 접하고 산다.

몇년 전에 하사호 사람들과 밤을 새며 다 본 [푸콘가족] 이야기를 지금 다시 올리는 건, 음... DVD를 샀기 때문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같이 샀는데 이건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보관중).

굳이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푸콘가족]의 독특함은 남다른 점이 있다. '마네킹 애니메이션'이라니!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고 인상깊게 봤기 때문에, 전부터 사고 싶었던 타이틀이다. 영어 음성이나 하다못해 자막이라도 있었으면 주변에 널리 알릴텐데 영어가 없어서 조금 아쉽다.

'애니메이션'인가?
가끔 이 작품 자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타이틀에 합당한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 애니메이션이 맞다고 해야할 듯 하다. 마네킹의 '행동'이 없다고 해서 애니메이션이 아닐 순 없다. 애니메이션의 근원적인 의미는 '움직임'에 있는게 아니라 '생명을 부여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푸콘가족]은 이 명제를 너무나 뚜렷하게 만족시켜준다.

마네킹
작품에 있어서 매체, 소재는 그 바탕을 이루는 핵심요소이고, [푸콘가족]의 가장 큰 특징 역시 '마네킹'에 있는데... 그냥 보면 단순한 4차원틱 사이코+허무개그물로 치부하기 쉽지만 (보고 있으면 뇌가 녹는다는 표현이 걸맞을듯), 사실 [푸콘가족]은 상당히 진지한 고찰을 해볼만한 작품이다. 어느 영화사이트에 갔다가 이 작품을 설명하는 짤막한 설명글을 보니, '미국 중산층 가정의 위선적 화목을 소름끼치는 웃음소리와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전달'한다고 한다. 뭐랄까 왠지 '이건 좀 아닌데;;'싶으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면이 있다. 


마네킹... 마네킹은 3D와도 다르고 2D와도 다르며 실사나 인형과도 다른 이상한 지점에 서 있다. 사람을 닮은 마네킹은 섬뜩한 이질감을 갖고 있으면서도 확실한 존재감이 있고, 동시에 생명력은 없으며 움직일 수도 없다.

마네킹은 백인밖에 없다. 뭐 예외도 있을지는 모르지만, 설령 색깔이 검다고 해도 기본적인 골격이나 생김새의 그것은 백인이다. 그것이 '일본'에 와 있다는 것이 그 이질감을 정당화해준다. 움직일 수 없는 마네킹에게 좀 더 쉽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마네킹'이 아닌 다른 요소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캐릭터 등의 정형화, 목소리, 연출, 스피드/리듬감 등이 그것이다. [푸콘가족]은 [푸콘가족]을 이루는 요소들 중 한가지라도 바뀌거나 변한다면 작품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갖기 어려울 정도로 미묘한 밸런스 위에 서 있다. 표정변화 없이 '항상' 멋지게 웃고 있는 이들을 위한, 특유의 비정상적인 느낌이 나는 개그 역시 그러한데 이것 역시 마네킹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던져주는 이질감에 걸맞는 특징('정신없음'과 '정신나감'이랄까;)이라고 보인다. 예컨데, [푸콘가족]의 화두는 이질감과 친숙함의 대립과 융화에 있다. 딱히 '위선적인 서양문화의 풍자'라는 측면은 강하지 않고,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은 목적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수단인 것이다.

음악 역시 그렇다. [푸콘가족]에는 배경음악이 없는데, 음악에는 자기 '목소리'가 있다. 음악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푸콘가족]의 '캐릭터'들은 순식간에 그저 '마네킹'으로 그 생명력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푸콘가족]은 그래서 항상 '대사'가 끊이지 않는데, 재미있는건 작중에서의 '고요'는 '침묵'이 아니라, 흡사 만화라면 "!" 이나 "..."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적의 대사'라는 점이다.

또 한가지 결정적인 것은 '동양의 시각'을 이해하는가이다. 이것은 두가지 갈래로 나뉠 수 있는데, 우선 하나는 미적 기준에서 '정중동'을 읽어낼 수 있는가이다. 사실 일본의 애니메이션- 특히 TV용-을 생각해보면 사실 움직임이 그다지 많지 않다. 상당한 양의 화면들이 사실은 똑같은 화면에 입, 눈 또는 머리카락같은 작은 것들에 부분적인 움직임들이 있을 뿐이다. 같은 이야기다.
나머지 하나는 동양의 '현대문화'에 익숙한가이다. '정서'나 '센스', 또는 유머감각이나 스타일, 혹은 만화적 느낌이라던지 동양인이 서양인과 서양문화를 바라보는 시점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것 같다. 위에 언급한 '일본에 있기에'라는 요소도 여기에 연관된다.
사실 이 두가지는 대개 한 패키지로 함께 전해지기 마련이라서, 비(非)동양권에서는 상당히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본 애니메이션보다 더 이해하고 동화되기 힘든 작품으로 보인다. 뭐, 세상은 글로벌화되어가고, '정신없는' 젊은 문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대개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생명없음'이 유달리 두드러지는 '마네킹'이란 매체. 따지고 보면 제정신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과 진하게 스며든, 만연하는 허무주의. 따지고 보면 [푸콘가족]은 내용보다는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풍자일 것이다. 따스한 온기와 아날로그적 정감에서 멀어져가는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또다른 모습인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문득 들지만, 문화매체의 폭을 넓히고 여러 제한과 위험요소 안에서도 항상 기발함과 참신함을 잃지 않는 [푸콘가족]은 참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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