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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7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 ♭ (冴えない彼女の育てかた♭)

by 노바_j.5 2017. 9. 30.

재미있게 보았던 "시원찮은 그녀를 위한 육성방법 (이하 사에카노)" 2기. 전반적인 퀄리티가 떨어진 점은 아쉬웠지만, 특유의 매력으로 여전히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원래 재치가 뛰어난 작품이기는 하지만, 특히 등장인물들 간에 오가는 대사들로 의미전달과 회피의 선을 능숙하게 잡는 데에는 혀가 내둘러졌다.

자체적인 스토리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감정들이 조금씩 더 겉으로 드러난다는 데에서 조금 더 현실성이 느껴지는데, 이는 이야기의 진전과 완성을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인 카토 메구미의 몰개성적인 매력이 반감되는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조금 있다. 어쩌면 2기의 마무리 즈음해서 이야기를 끝내는 것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얼마 전에 "카리나"라는 미국 가수가 갓 17살에 발매한 '슬로우 모션'이란 곡을 들었다. '다가오는 당신이 싫지는 않지만 부담스러우니, 친구부터 시작해서 슬로우 모션으로 사랑에 빠지면 안되나요?'라는 내용의 풋풋한 곡이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슬퍼한다는 것은 사실 그 나이대의 소녀들에게만 허용될 수 있는 일종의 모순이다. (여성이 BL에 빠지는 것 역시도 같은 방어기제 - 사랑에 호기심은 많지만 자기가 발을 담가서 다치기는 싫은 - 에 기인한다는 글도 있다).

학원 청춘물의 경우에도 이런 '미숙함'이 매력이 된다. 이 마음이 무언지, 이럴 때엔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 그 시기가, 시청자들에겐 설령 '눈가리고 아웅'이더라도 그것을 용인하고 즐길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떻게 결론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인물의 인격이나 관계가 형성되고 정립이 되어간다. "사에카노"는 이 과정을 굉장히 긴 호흡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이 부분이 너무 길어져서 (즉, 캐릭터들이 너무 오랫동안 둔감하다던지, 혹은 본격적인 행동을 너무 취하지 않는다던지)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부분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사에카노" 전체의 완성도를 결정짓지 않을까 싶다.

"사에카노"의 이런 부분에서 이미 간극과 딜레마가 생기는 건, 등장인물들의 눈썰미가 날카로운 부분이나 '크리에이터' 쪽의 이야기들과 대비하면, 주연들간의 감정이나 관계에서는 이상하리만치 맹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사에카노" 속의 세상은 (현실세상과는 다르게) 모두가 원래 이렇게 연애감정에 관해서 둔한 세계인가...? 같은.

더불어, 이 작품은 '크리에이터'나 '프로'라는 것에 대해서 좀 과하게 호들갑스러운 경향이 있다. 원작자 자신의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이건 좋게 비유하자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 교수같은 것이다. 실제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인물상이지만, 플레처 교수는 '예술적 완벽함에 대해 아티스트가 느끼는 압박감'의 의인화라고 보는 것이 가장 그럴싸 하다. 플레처 교수를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주는 이상적인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는 해석이다. "사에카노"에서 묘사하는 업계나 업계인들의 모습이 자칫 보는 이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지 않을지 걱정된다.

이야기의 진전과 더불어 세계관에 이런 뒤틀림이 생겨나면서, 1기만큼의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재미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비범하게 시작해서 범작으로 끝나더라도 인기는 상당히 유지되겠지만, 가급적이면 좀 더 멋지게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3기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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