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6-202022

울려라! 유포니엄 - 리즈와 파랑새 성장의 한 페이지에 현미경을 갖다 댄 것 같은 작품. 이야기의 범위가 굉장히 작고 좁은데, 덕분에 순간이 영원으로 느껴질 만큼 극도로 세밀하게 순간 순간에 포커스를 맞추고, 암시와 은유가 뚜렷하게 반복되며 제시된다. 아마도 영상 미디어의 연출에 관한 교재로서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리즈와 파랑새의 관계역전 등 전반적인 요소들은 바로 가늠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쪽은 리즈이며, 파랑새는 순수하고 리즈를 좋아하는 점이 강조된다. '혼자'라는 키워드로 초반에 미조레와 리즈를 연결시키지만, 사실 리즈는 그림같은 집에서 신선처럼 사는걸 선호할 뿐 딱히 외톨이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복어가 뭐지...?' 싶었는데, 다른 분의 리뷰 글을 보고 아하... 할 수 있었다. '울려라! 유포.. 2022. 4. 6.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この素晴らしい世界に祝福を!) 1~2기 요 몇년 동안은 라노벨이 떠오르면서, (이고깽에서 이어진) 이세계물이 부쩍 많이 나온 느낌이다. 2010년대에 가장 두드러진 메인스트림이 아닐까 싶을 정도. 여러가지 작품들이 나왔지만 어쩐지 그닥 내키지 않던 와중에, '클리셰 비틀기' 위주의 코미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서 본 작품인데, 가볍고 유쾌하게 잘 볼 수 있었다. 지인에게서 작품 소개를 들었을 때에는 뚜렷이 눈치채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내가 이 작품에 끌렸던 또다른 요소는 주인공들이 글러먹었다는 점이었던 것 같다. 보다 보니, 이 작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요소가 이 두가지 아닐까 싶다. 글러먹은 와중에도 끝내는 인도적인 선택을 하고,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적당히 그런대로 살아가는 것은, 사실 굉장히 현실적인 공감.. 2020. 3. 2.
3월의 라이온 (3月のライオン) 시즌 1 & 2 처음 봤을 때에는 심드렁해서 미뤄뒀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3월의 라이온. '약속의 네버랜드'를 성장물로 정의했다면, 3월의 라이온은 치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치유계' 작품들을 보고서는 힐링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덕분인지 어지간한 것들은 잠깐 보다가 그냥 접어버리는 수준이지만(...). '치유' 역할의 중심인 카와모토 가족이 주는 느낌은 여타 작품들과 비슷함에도 이 작품이 치유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주인공인 키리야마 레이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분투가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와닿아서 그렇지 않을까. 카와모토 3자매의 경우 역시도 - 가정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서 레이에게 따듯한 품이 되기는 하지만 - 깊은 상처가 뒷켠에 그늘을 드.. 2020. 2. 14.
약속의 네버랜드 (約束のネバーランド) (1기) 이야기의 완성도가 가장 높은 그레이스필드 탈출까지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끊어냈다. 이 작품의 주제가 격인 '이사벨라의 노래'가 아이들의 승리에 대한 찬가, 나아가는 앞길에 내리는 축복이 되어 흐르는 마무리는 전율을 불러 일으킨다. '지금, 거기에 있는 나' 등에서 보이듯 '귀여움 vs. 잔혹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렬한 대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불안함을 강조하는 서스펜스 / 호러물 스타일의 연출도 일품인데, 만화와는 다른 영상물로서의 강점을 십분 활용하는 느낌이다. 작가가 가졌던 참신하고 충격적인 컨텐츠가 완숙한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의 손길로 잘 다듬어진 느낌. 1쿨의 호흡도 아주 좋고, 무엇보다 1화가 너무 대박이다. 이런 연재물은 첫머리가 가장 중요한 법인데, 보는 사람을 갈고리로 훅 채가버린다. 주인.. 2020. 1. 12.
클라우스 (Klaus) 가까운 이가 보고 싶다고 하여 같이 느긋하게 감상하였다. 산타 클로스의 기원에 대한 재해석인데, 일단 아트웍이 첫눈부터 마음에 들더라. 기존에 보기 힘들었던 기법의 툰셰이딩 느낌도 좋았고. 색감이 조금 평면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따스하고 풍성하다. J.K. 시몬즈를 비롯한 성우들의 연기도 일품. 개연성에서는 큰 점수를 주기 힘들었고, 특히 교사인 여주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에 비하면 비중이나 개연성에서 조금 억지로 끼워넣은 것 같아서 아쉽다. 문제는 여주 뿐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 작품이라서 그런지, 기적에 기대는 것을 크게 흠잡고 싶지는 않다. 사실 이 작품은 소위 '필 굿 (feel good)' 분위기를 강조하고 또 많이 기대기도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기분 좋게 크리스마스를 기다.. 2019. 12. 24.
배를 엮다 (舟を編む) 해외에서 오래 살다보니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도 곧잘 접하는 문제다. 직업상 사전을 자주 뒤져보기도 한다. 사실 소통에서의 난점은 단순한 단어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표현의 문제일 때가 많지만, 어쨌든 음... 그렇다. 사전은 중요하구나. 하지만 그럼에도 이 애니메이션은 의미부여에 너무 호들갑스럽다. 작품이 너무나 잔잔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그렇게 한 것일까? 바다와 문자 등을 이용한 심적 묘사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오는데, 정말로 공감이 갔던 것은 최후반부에 검열 실수를 눈치채고 공황상태에 빠지는 부분 정도? '배를 엮다'의 미학은 고즈넉함을 즐기는 데에 있다. 주인공 커플을 필두로 사전편집부실과 그 속의 사람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정신없이 바.. 2019.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