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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8

울려라! 유포니엄 - 리즈와 파랑새

by 노바_j.5 2022. 4. 6.

성장의 한 페이지에 현미경을 갖다 댄 것 같은 작품.

 

이야기의 범위가 굉장히 작고 좁은데, 덕분에 순간이 영원으로 느껴질 만큼 극도로 세밀하게 순간 순간에 포커스를 맞추고, 암시와 은유가 뚜렷하게 반복되며 제시된다. 아마도 영상 미디어의 연출에 관한 교재로서는 상당히 좋은 작품이지 않을까?

 

리즈와 파랑새의 관계역전 등 전반적인 요소들은 바로 가늠할 수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능동적인 쪽은 리즈이며, 파랑새는 순수하고 리즈를 좋아하는 점이 강조된다. '혼자'라는 키워드로 초반에 미조레와 리즈를 연결시키지만, 사실 리즈는 그림같은 집에서 신선처럼 사는걸 선호할 뿐 딱히 외톨이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복어가 뭐지...?' 싶었는데, 다른 분의 리뷰 글을 보고 아하... 할 수 있었다.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 내내 이 노조미란 캐릭터에 대해서 뭔가 의아함 내지는 찜찜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뭔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는 느낌이다. '이렇게 행동을 했어서 이렇게 되었구나' 라는 부분은 알겠는데, '왜 이렇게 하는거지?'에 대한 부분이... 성격의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랄까. (답답해 보이지만) 순수한 미조레에 비해 (밝고 직선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속을 알 수 없는 것은 노조미 쪽인데, 작 초반과 후반의 대비를 편집증적으로 강조하는 것의 일환일 수도 있고 (캐릭터의 인상에 관한 것 까지도)... 미조레에 비해 노조미의 심리 묘사가 되지 않는 것은 제작진의 치사함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만큼 노조미란 캐릭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쾌활해 보이는 캐릭터가 실은 속으로 복잡하다는 이야기는 '토라도라!' 등에서도 가끔 볼 수 있긴 하지만... 무섭다 일본의 혼네와 다테마에!

 

'울려라! 유포니엄' 시리즈가 참 좋은 점은 '음악과 학생의 성장통'에 대해서 독보적인 진지함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얼핏 명료하지 않을 수 있는, '연주력'을 통한 전달을 예로 들면, 100% 모든 장면에서 그렇지는 않은 듯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작품은 실제 음정이 맞지 않는다던가, 연주가 서투르다던가 잘한다던가를 실제로 소리로 표현한다. '음악성'이란 압도적 재능 차이가 주는 무자비한 압박감은 또 어떠한가. 어찌 보면 현실의 삶에서 누구나가 마주해야 하는 크나큰 갈등... '불공평하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나아가야만 한다'라는 메시지를, 창작물 ~특히나 '이상'과 더욱 가까운 만화 계열에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은 흔치 않다.

 

'리즈와 파랑새'가 참 이쁜 작품이구나 하는 것은 그 규모의 아기자기함이나 극도로 섬세하고 감각/감성적인 부분에 있기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두 사람을 다 파랑새라고 해 주는 데에도 있다. 히히 실은 둘 다 파랑새였지롱 부모 입장에서 애들 커서 떠나가면 다 파랑새 아니겠는가 허허... 이렇게 둘 다 각각 자신으로서의 성장을 한 걸음 내딛고, 굳이 집착애착인형처럼 들러붙어있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곪은 갈등이 터지고 새로운 관계의 정립과 거기에 맞추어 적응하는 속도가 참 빠르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영화 '두만강'에서 보여지듯 아이들 특유의 탄력(회복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느껴진다. 결국 노조미가 바란 대로 '헤피엔딩' 이었다.

 

- 교토애니 방화 사건(2019)으로 명을 달리하신 고인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