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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5/1992

붉은 돼지

by 노바_j.5 2007.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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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존중하지만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딘가, 심술난 노친네같은 느낌이 작품에 배여서 그런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마음에 들어오더군요. '결국 그렇게 가야한다'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붉은 돼지]도 그런 연장선에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자신의 삶과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에 미화된 듯 하여 거부감을 가졌었는데, 한 편 '언제쯤이면 이 작품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마음이 성숙해졌나 봅니다. 다시 틀어본 붉은 돼지는 굉장히 슬프고, 쓸쓸함이 담겨있었는 작품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야자키 최고의 작품으로 [붉은 돼지]를 꼽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중에서 가장 이단적이고 유별난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촛점이 한 중년 남자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달리 풀이하면, [붉은 돼지]는 본질적으로는 굉장히 성인취향의 작품입니다. 미야자키가 몇 번이고 '이 작품만은 정말 흥행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고 인터뷰 등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래서이겠지요.

미야자키의 아들인 고로가 [게드전기] 발매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터로서는 100점, 아버지로서는 0점이었다'라고...

인간이기를 버렸기에, 제정신의 포르코는 인간의 모습을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싫어서일지도 모르지만 인간이기가 미안해서이기도 합니다. 아드리아해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사람의 관심은 비교적 적지만, 포르코는 아드리아해를 사랑합니다.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은 자신만의 가치와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가치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 포르코는 모든 것으로부터 등돌려야만 합니다. 사회도, 사랑도... 그 마음이 아름답다고 하여도, 어찌보면 포르코는 결국 이기적인 것일 뿐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돼지의 얼굴을 합니다. 그가 인간의 모습을 보일 때는 혼자 있거나 감상에 젖을 때 뿐입니다. 지나와 피오라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작품에 등장하고 포르코에게 연심을 갖는 것은, 미야자키가 자신이 인기가 있었다고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집을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 호감이 있음에도 잘 대해주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나온 것이라고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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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별난 작품인 것 같습니다. 흥행과 멀게 생각했다는 이유 중의 하나도 그런 것이겠지만... '무엇으로 사람들한테 어필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딱히 나오는 대답이 없습니다(포스터를 한번 보세요!). 답은 단 하나 '미야자키 하야오'입니다. 물론 실제 작품 자체는 굉장히 뛰어납니다. 볼때마다 거듭 느끼는 거지만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정말 잘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자연스럽고 다양한 움직임들입니다. 미묘한 그런 움직임들을 정말 잘 포착했고, 또 표현해냈구나 하는 점에 항상 감탄합니다.

시대가 변했어도 포르코는 시대에 맞는 신형 비행기에 자신의 색을 입히고 언제까지나 창공을 누비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붉은 돼지]는 아름답습니다. 지나와 포르코가 맺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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