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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2016

3월의 라이온 (3月のライオン) 시즌 1 & 2

by 노바_j.5 2020. 2. 14.

처음 봤을 때에는 심드렁해서 미뤄뒀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3월의 라이온.

'약속의 네버랜드'를 성장물로 정의했다면, 3월의 라이온은 치유물이라고 생각한다.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치유계' 작품들을 보고서는 힐링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덕분인지 어지간한 것들은 잠깐 보다가 그냥 접어버리는 수준이지만(...). 

'치유' 역할의 중심인 카와모토 가족이 주는 느낌은 여타 작품들과 비슷함에도 이 작품이 치유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주인공인 키리야마 레이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분투가 시청자들에게 강렬하게 와닿아서 그렇지 않을까. 카와모토 3자매의 경우 역시도 - 가정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서 레이에게 따듯한 품이 되기는 하지만 - 깊은 상처가 뒷켠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아픈 자가 아픈 자를,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해내는 과정이 가슴 뭉클하다.

작가인 우미노 치카가 자신만의 영역을 이렇게 확고하게 다진 데에는 1) '진짜배기'에 대한 갈망이 2) 한없는 순수함과 3) 현실 속에서 맞닿아 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짜배기라는 것은 어떤 식으로건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기에, 카와모토 자매가 보여주는 '순수' 역시도 키리야마 레이의 진짜배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미노 치카는 여기에 더해, 보송보송하며 화사한 작풍에서는 언뜻 떠올리기 힘든, 극현실적인 어려움을 주인공들에게 부과한다. 동화같지만 절대로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지 않는, 서릿발같은 엄격함이 있다. '사쿠라장의 애완그녀'나 '시원찮은 그녀의 육성방법' 처럼 가볍거나 오버스럽지 않은, '진짜배기'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가 좋다. 우미노 치카의 작품은 군데군데 세세한 부분에서는 현실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경우에도 담담한 스토리텔러로서의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가 매력적이다. 내가 당사자가 된 느낌보다는 한발 물러나서 유심히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전작과의 차이라면 '허니와 클로버'의 히로인인 하나모토 하구미는 이런 작가의 정수를 한몸에 집약시킨 캐릭터였는데 반해, 3월의 라이온에서는 그 요소들을 조금 더 세분화해서 나눠놨다는 점이다. 키리야마 레이는 분명히 외모도 곱고 아주 착하지만, 아기같지는 않다. 오히려 작중에서 가장 마음 속 어두움이 깊은 캐릭터이다. 그를 둘러싼, 심적으로 가장 긴밀한 사이인 쿄코와 히나타(이지메 사건)가 보여주는 음침함 역시도 보는 이의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날카롭고 드라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기에 주인공의 친우 겸 라이벌을 자처하는 니카이도 하루노부의 건강 문제까지... 기실 이 작품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런 어려움이나 어두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보는 이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작품과 작가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인지, 제작진의 투자와 열의가 엄청나다. 수시로 미술 스타일을 바꿔가면서까지 정확한 느낌을 연출하려고 노력하는데, 비록 움직임을 최소화한 컷씬이라도 이게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수준의 영상들을 내놓는다. (보면서 이렇게 캡쳐샷을 많이 찍은 작품이 있었나 싶다.) 특히 이 부분은 작가 특유의 풍부하면서도 가감없는 묘사를 더욱 극명하게 옮겨놓았다는 점에서 큰 플러스다. 특히 각기 다른 미술 소재 혹은 묘사법의 느낌을 물씬 살린듯한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스타일이 그야말로 천변만화(千變萬化) 한다.

~ 내가 늙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요 몇년간의 작품들 중 투자가 제대로 된 작품들을 보면 영상적인 진보에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정도다. 순수 '배경'음악화 되어가는 OST 트렌드는 좋아하지 않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상이 담아내는 정보량이 많아지다보니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같기도 하다. 이젠 멜로디가 치고 들어갈 여백이 없다고나 할까. ~

작가의 건강문제 때문인지 원작 진행이 엄청나게 느려진 만큼 작가의 이번 작중 페르소나는 니카이도 하루노부 확정이다, 아직 이야기의 끝까지 볼 수 없는 것은 상당히 아쉽지만, 애니메이션 판이 커버하는 분량까지는 깔끔하게 2쿨로 다듬어놓았기 때문에 차후 완성이 기다려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