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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Sonny Boy - 간만의 문제작. 엔딩에 대한 고찰

by 노바_j.5 2022. 4. 22.

소니 보이는 사실 그 메세지적인 측면에서는 1편 만으로도 완성이 되어있는 작품이다. 초반 에피소드들에서는 말그대로 그 나이때 아이들이 겪을만한 고민, 갈등, 생각들이 주를 이루고 후반으로 가면서는 조금 더 총체적인 세계관에 대해 비중을 두고 있지만, 어찌 보면 '관측'하는 지점이 각 화마다 다를 뿐, 주제의식이나 메세지는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한다.

 

일단 정주행을 마친 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작품은 꾸준하고 일관적이기는 하지만 설정 면에서 레이어를 너무 층층이 쌓아놓고, 정보 전달을 연출에 너무 많이 의존해서 완주하기는 피곤한 작품이다. 심지어 일반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기엔 그냥 버려지거나 해명되지 않은 것들 ~ 특히 캐릭터들 ~ 도 너무 많다.

 

이 작품이 가장 문제적(?)인 이유는, 현실 세계의 부조리함 - 의지와 관계없이 환경이 급변한다던가, 타고난 재능과 기질의 차이, 일어나는 일들의 비논리성 등등 - 까지도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냈기 때문 아닐까 싶다. 바로 윗 문단에 지적한 부분들 역시도 이 같은 맥락에서라면 '불친절한 (현실) 세상'이라던가, '갑작스러운 친구와의 이별' 등으로 수용 가능한 부분이 된다. 대중을 위한 작품으로서 제대로 성립하는지 생각해보면 약간 갸웃해진다. 아티스트적인 작품이면서도 어느정도 대중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할 듯 하다.

 

 

엔딩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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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보면서 노조미는 나가라의 엄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는데, 소년의 성장과 함께 맞이하는 유년기+모성의 졸업(작별)이라는 점에서 소니 보이의 엔딩 역시도 은하철도 999의 엔딩과 비슷하다. 메텔과 노조미는 능동성이랄까 외향성이랄까에서 차이가 많이 나기는 하지만...

 

많은 SF 작품에서 나오듯 기억의 소멸은 그 인물의 소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지막 화에서 나가라와 노조미의 모습은 내가 본 작품들 중 역대급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엔딩인데,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이 엔딩이 Sonny Boy라는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위에 이야기한, 어찌보면 과할 정도의 '현실성'을 관철시키기 위해서이다.

 

허무하게 사라져버린 노조미,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표류세계에서의 경험(= 카피본의 인격)이 이전되지는 않지만, 아마도 노조미는 노조미인 채로 잘 살아있을 미래 (노조미에게 있어서 반짝이는 미래였기에)... 그리고 그 곳으로 가는 '선택'을 한 나가라.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수동성에서 탈피하고 안전한 바운더리를 뛰어넘는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결과가 꼭 해피엔딩이라는 법은 없다. 다만 그 행위 자체로 인해 나는 나로서 반짝일 수 있는 것이며, 선택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 역시도 '온전한 나로서 살기'에 고스란히 동반하는 책임인 것이다. 여기에 Sonny Boy 이야기의 정수가 있다: 만약 나가라와 노조미가 이어진다면 그것은 '(너 하고 싶은대로 살면) 다 잘 될거야'라고 마지막에 시청자를 기만해버리는 스토리텔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그런 사탕발림 대신 '설령 자신이 죽어있는 미래더라도 내 의지로 나아가겠다'는 말의 무게감이 어떤 것인지 맛보여 줌으로서 이 이야기의 앞과 뒤를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시켰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은 자기만족 뿐이 아니냐고 자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표류세계에서 노조미는 아사카제가 (본심은 아니었지만) 퉁명스레 쏘아붙인 말처럼 당장 능력 면에서 도움이 되는 것 없는 일원이었지만,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빛과 같은 존재로 살다 가고, 영감을 주고, 기억속에 남아있지 않았는가?

 

또한 이것은 오픈 엔딩이다. 나가라에게 있어 노조미가 그만큼이나 소중한 존재라면 본인이 다시 '능동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고, 또 그 선택권 역시 오롯이 본인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여운이 강렬한 것은 그 이야기 자체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위에서 언급한 부분의... 말하자면 감성적인 리얼리티가 굉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아이같은 아이들, 정말 현실같이 다가오는 표류세계의 세계관. 피곤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면서도 그만큼 감정이입이 된다. 작중에서도 (그리고 뮤비에서도) 상당히 큰 키워드인데,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졸업앨범'을 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그 시절, 그 심정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청자 역시도 Sonny Boy라는 세계관에 새롭게 내던져지고, 여기에선 '작중 인물은 모르지만 관람자는 아는' 정보의 불일치 같은게 별로 없다. 작중 인물들과 시청자가 이해하는 범위는 거의 동일시된다. 그런 와중에 중학생 등장인물들이 그 나이때의 사고양식을 보여주며 사회가 형성되니, 보는 이도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것이다. 작품이 '당신은 깨어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기는 하지만, 시청자 역시도 환경에 따라 휘둘리기 쉽다는 것을 몸소 체험시켜 준다고나 할까.

 

이 작품은 주제가의 제목처럼 '소년소녀'들을 대상으로 한 메세지이지만, 소년소녀들이 보라고 만든 작품은 아니다. 뭐랄까 제작진 본인들 위주의... 그렇다고 마냥 꼴리는대로 폭주해서 만든 자위용 애니메이션이 아닌, 온전히 자신들이 전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고 싶은 방식대로 한껏 만들어서 내밀어 보여주는 물건이다. 아이들이 점토로 무언가 만들어서 보여주듯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느낌으로. 

 

수업을 하면서 나이가 50~60세 정도 된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그의 눈은 소년처럼 맑고 반짝이고 있었다. 나이 40에 이르러서야 '결국 이것이 아니면 안된다'며 포기할 걸 내려놓고 미래가 불투명한 세계로 뛰어들려는 나같은 사람들도 찾아보면 꽤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애니메이션 업계도 그런 곳이다. '이것 밖에 할 줄 아는게 없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것이 아니면 안되는'... 즉 자의로든 타의로든 이것밖에 없는 사람들만 남는 곳이 애니메이션 업계라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시시각각 선택의 순간은 찾아오는데, 많은 경우는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지만, 이따금씩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할 때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아이부터 나이든 노년층까지, 우리 모두의 안에는 소년 소녀가 있다. 그리고 작든 크든 우리는 그때그때 내리는 결정과 행동으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써내려간다. 궁극의 자기표현이랄까. 이 작품 Sonny Boy는, 그렇게 더 전향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온전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보라고 격려해주는... 물리적 나이와 관계 없이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소년 소녀를 불러일으키고 말을 거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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